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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8일 “아이들이 없으면 미래도 없습니다” <김 현 철 죽호학원 이사장>
봄만 되면, 캠퍼스 벚꽃 사진이 SNS를 뒤덮습니다. 그럴 때마다 따라붙는 말이 있지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 한때는 씁쓸한 농담쯤으로 들리던 이 말이, 이제는 현실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방의 대학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중·고등학교까지, “신입생 유치”라는 말을 써야 할 만큼, 아이를 모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학교 울타리마다 ‘신입생 모집’ 현수막이 걸린 풍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통계로도 상황은 분명합니다. 2024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48명,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가 한 명에도 못 미치는 숫자입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숫자입니다. 인구 그래프를 보면 계단이 아니라 벼랑처럼 뚝 떨어집니다. 외동 아들과 외동 딸이 만나서, 외동을 낳는 시대. 통계가 보여주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그렇다면, 그다음 세대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손자·손녀 세대는 “삼촌”이 뭔지, “고모”와 “이모”, “사촌”이 뭔지 몸으로 느끼며 자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집 안에서 부대끼며 싸우고 화해하는 법을 배울 기회도 줄어들 겁니다.
저는 4개의 중·고등학교를 맡고 있는 학교법인 이사장으로서, 해마다 줄어드는 신입생 통계를 보며 그 심각성을 체감합니다. 입학원서가 한 장 한 장 줄어들 때마다, 그만큼 교실 하나의 불이 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앞으로 5년, 10년 뒤 학생 수 예측표를 들여다보면, 어느 학교를 먼저 통합하고 어떤 교실을 비워야 하는지부터 계산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교사 한 분을 새로 뽑는 일조차 ‘학생 수가 줄어들 텐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 속에서 여러 번 다시 따져봐야 합니다. 아이들이 있어야 교사가 존재하고 학교도, 지역도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격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을까, 말까’를 인생 최대의 프로젝트처럼 계산하고 또 계산합니다. 사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두 딸을 키우며 잠 못 이루던 밤들이 있었고, 제가 쓰고 싶던 시간을, 통째로 아이에게 내어준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제 인생이 가장 많이 성장하고, 가장 많이 깊어진 시간 역시 바로 그 아이와 함께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 안의 이기심과 마주하며 조금씩 덜어내는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처음 저를 아빠라고 부르던 순간, 운동회에서 나를 향해 두 팔을 휘저으며 달려오던 그 얼굴, 그 작은 손을 잡고 외출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나눴던 사소한 대화들까지.. 월급 명세서에는 찍히지 않는 행복이고, 통장 잔고로는 계산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저는 비로소 ‘부모’라는 이름을 얻었고, 세상을 한 번 더 배우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이 문제를 “요즘 젊은 사람들 책임”으로 돌려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집값, 일자리, 돌봄, 교육 모든 것이 너무 비싸고, 너무 치열한 경쟁의 세상에서 “아이를 낳으라”고만 말하는 건 공허한 구호일 뿐입니다.
아이를 선택한 가정이 덜 두렵고, 덜 외롭고, 덜 손해 보는 사회를 어른들이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퇴근 시간을 조금 앞당겨 주는 회사, 학부모의 출근 시간을 아이 등교에 맞춰 조정해 주는 제도, 마을이 함께 키우는 돌봄과 교육의 안전망이 촘촘해질수록 “그래, 우리도 한 번 키워볼까?”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부부가 조금은 늘어나지 않을까요.
오늘 우리 교실과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 아파트값보다 내 연금보다, 이 나라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든든한 자산임을 명심해야합니다. 아이들이 없는 나라의 미래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나라, 그 미래를 지키는 일...! 지금 이 순간, 방송을 듣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