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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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7일 “봄바람이 분다” <정희남 대담미술관장>

 폭설과 강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봄은 아득히 멀어 기억 속에만 머무는 듯 합니다. 그러나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도 시간의 사슬에 묶여 때가 되면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옵니다. 시인 윤동주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봄이 혈관(血管)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어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봄은 혈관 속을 흐르는 시내처럼 스며들어, 마침내 우리를 다시 피어나게 합니다. 죽어있던 감각을 깨우고 우리를 다시 산으로, 들로, 강으로 안내합니다. 홍매화, 매화, 수선화, 산수유, 개나리, 벚꽃, 유채꽃 등 온천지가 꽃의 향연입니다. 

 

 하지만 전쟁, 고유가, 고물가, 경기 침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쉽게 위축되고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더 쉽게 움츠러듭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에게 기운을 주고 기분을 전환시켜 스스로를 다독이고 오는 봄, 가는 봄을 마음껏 누려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저는 우연히 그림 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지만,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색을 많이, 깊이 느끼고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많은 색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림을 그리고 오래 바라보고, 가까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통해 비로소 색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봄에 나뭇가지에 돋아나는 연노랑과 연두는 참으로 곱고 섬세합니다. 조금 더 짙어지면 풀잎의 연두, 녹색, 청록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녹색’ 안에서도 수십가지의 결로 살아 숨쉽니다. 멀리서 보면 모두 같은 색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안의 미묘한 차이들이 드러납니다. 산수유의 밝은 노랑과 개나리의 짙은 노랑, 수선화의 투명한 노랑 등, 온갖 노랑과 형형색색의 벚꽃, 매화꽃, 심지어 복숭화의 형광 핑크까지 각양각색으로 피어납니다. 이렇게 색의 다양함에 빠져 자연을 즐기다 보면 모두가 신비롭고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 작은 즐거움을 더하는, 저만의 색을 즐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계절별로 색에 맞춰 옷을 입는 것입니다. 꽃이나 계절에 맞게 스카프나, 바지, 겉옷, 양말, 신발 등을 맞춰 입고 나가면 저절로 흥이 납니다. 봄에는 분홍이나 노랑·베이지· 연두를, 여름에는 흰색·파랑·녹색을, 가을에는 주황·노랑·빨강을, 겨울에는 흰색·검정·빨강 등을 포인트로 계절의 온기를 드러내봅니다.

 

 ‘이 계절은 자연에 어떤 색들이 피어날까?’ ‘나는 그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기분을 내고 즐겨볼까?’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색깔을 활용하여 자연을 더욱 가까이 자세히 보고 즐기다 보면 헛된 불안함과 걱정도 사라지고 스스로 행복해지고 감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이 자연의 주인이자,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움직이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음이 심란하고 경제가 어렵고 정국이 어지러울 때일수록 자연은 우리들의 위대한 스승이자 심신의 피로를 씻어주는 조용한 치료사가 될 것입니다. 이 좋은 계절에 연분홍 치마는 아니어도 좋습니다. 봄바람 휘날리며 내가 자연의 주인공이 되어, 아지랑이처럼 이리저리 봄나들이를 떠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