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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1일 “소멸에 대하여” <최유준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교수>
안녕하십니까. 전남대학교 최유준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지역의 현실과 관련하여 ‘지역소멸’이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띕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60퍼센트가 소멸 위험 지역이라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참 막막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소멸’이라는 말 자체가 좀 불편합니다.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서울사람’이라고 그다지 의식하지 않습니다. 저도 서울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서울사람’이라기보다 그냥 ‘한국사람’이라고 여겼던 거지요. 그런데 광주에 와서 살게 된 이후, 비로소 ‘지역’이 새롭게 의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서울을 ‘보편적 기준’으로, 지방을 ‘특수한 곳’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사람은 스스로 보편적인 ‘한국인’으로 느끼고 마는 반면, 지방에 사는 사람은 자신이 ‘지역민’이라는 사실을 더 자주 의식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그려진 보이지 않는 지도가 만들어 내는 중심과 주변의 비대칭적 권력관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중심의 입장에 서면 지역의 섬세한 면까지 살피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구 관점의 ‘소멸’이라는 말은 중심에서 변방을 바라보는, 다소 폭력적인 언어는 아닐까요?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수적인 지표만으로 지역의 ‘소멸’을 말하는 것은 중심의 언어입니다. 지역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고유한 삶의 방식, 그곳에서만 피어나는 문화와 감각, 이웃 간의 관계가 함께 사라지는 데 있습니다. 요즘 귀농·귀촌 정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습니다만, 소멸을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사람을 지역으로 보내 인구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사람이 뿌리를 내립니다.
저는 ‘지역’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위기’는 세계 전체의 위기이며, 나아가 인간성 자체의 위기를 감지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서울과 같은 중심지보다 광주와 같은 주변부에서 ‘지역’을 더 선명하게 의식하게 된다는 것은 핸디캡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더 깊고 진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선과 감각을 갖게 된다는 뜻이지요.
지역이나 지방은 중심에서 멀어진 끝자리가 아닙니다. 중심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다시 말해, 지역에서 산다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뜻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스스로 중심을 자처하는 이들이 서슴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이 시대에, ‘소멸’이라는 중심의 언어 대신, 가장자리의 섬세한 언어로 우리의 삶을 다시 이야기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