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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4일 “봄비가 내리던 외래” <김성민 전남대 의대 소아정형외과 교수>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비가 내렸습니다. 겨울의 비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차갑고 날카롭던 겨울비와 달리, 이 비는 어딘가 부드럽고, 땅에 닿는 소리조차 조용했습니다. 봄비가 왔구나. 우산 너머로 보이는 거리에는 연둣빛이 번지기 시작한 나뭇가지 위로 빗방울이 내려앉고 있었고, 공기 속에는 흙과 풀의 냄새가 섞여 있었습니다.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이 조금씩 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풍경이 그저 좋았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하니 풍경이 조금 달랐습니다. 우산을 접으며 숨을 고르는 어르신, 아이를 안은 채 젖은 외투를 털어내는 어머니, 목발을 짚고 미끄러운 바닥을 조심스럽게 걷는 환자분. 봄비가 좋다고 느꼈던 제 마음이 잠깐 멈추었습니다. 저에게 비는 계절의 낭만이었지만, 이분들에게 비는 병원까지 오는 길을 더 힘들게 만드는 장애물이었을 것입니다. 비가 오면 길이 미끄럽고, 목발은 더 불안해지고, 휠체어 바퀴는 물기에 헛돌고, 아이를 안은 팔은 더 무거워집니다. 그런데도 오셨습니다.
외래 진료를 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도 환자분들이 올까?" 그런데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무더위가 와도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먼 지방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오시는 보호자분, 아이를 업고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오시는 젊은 부모님. 어떤 분은 전날부터 근처에 숙소를 잡고 오시기도 합니다. 그분들이 비를 맞으며까지 병원에 오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이를, 자기 부모님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그분들을 병원 문 앞까지 데려오는 것입니다.
소아정형외과 외래에는 특히 그런 마음이 많이 보입니다. 아이의 다리가 조금 휘었다고, 걸음이 조금 다르다고, 멀리서 아이를 데리고 오시는 부모님들. 때로는 큰 문제가 아닌 경우도 있지만, 그분들이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들인 시간과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의사로서 저는 그 마음 앞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비를 맞으며 찾아온 그 마음에 부끄럽지 않은 진료를 해야 한다고, 비가 올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게 됩니다. 한 분 한 분의 진료가 끝날 때마다, 이분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감수하셨을까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봄비는 땅을 적시고 씨앗을 깨웁니다. 어쩌면 병원을 찾아오는 발걸음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아프고, 지금은 힘들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 발을 내딛는 것. 그 한 발이 결국 새로운 계절을 여는 시작이 되는 것.
비를 맞으며 병원에 오시는 분들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빗속에서 배달을 하는 사람, 젖은 우산을 들고 아이를 등원시키는 부모님. 우리 모두는 각자의 비를 맞으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삶에 비가 내리고 있다면, 잠깐 멈춰도 괜찮습니다. 다만, 우산을 접지는 마십시오. 그 비가 그친 자리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피어나기 마련입니다. 오늘 비를 맞으며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든 분들게, 그 걸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