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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30일 “1만년이 걸린 반려동물의 정착 오디세이” <임민엽 수의사>

 최근 한 영웅의 험난한 유랑과 감동적인 귀향을 그린 영화 오디세이를 떠올려봅니다. 수많은 고난과 파도를 넘어 마침내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는 먼 여정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우리의 무릎 위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작은 아이들도 사실 수만 년에 걸친 위대한 생존 오디세이를 거쳐 우리에게 도달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봤습니다. 야생에서 적자생존하며 살던 이들이 인간의 다정한 가족이 될 때까지 그 긴 치열한 역사 속에는 무수한 적응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먼저 늑대의 후손인 개들의 여정입니다. 약 1만5천년 전은 수렵 및 채집의 시대였습니다. 개들은 먹을 것을 찾다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에게 사주경계와 사냥 능력을 제공하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 자발적 공존을 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들은 육식을 했던 기존의 식이 패턴과는 달리 인간의 식생활에 맞춰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유전자를 발전시켰고, 인간의 눈빛을 읽고 꼬리를 치는 사회적 성향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정이 늘 따뜻했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음에도 역사의 수많은 순간 동안 개들은 단순한 사냥 도구나 경계병, 혹은 식량 자원으로 취급받으며 목줄에 묶인 채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했고 산업화 초기에는 주인 없는 떠돌이개, 들개라는 이름으로 길거리에서 배척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개들은 인간을 향한 신뢰를 끝까지 거두지 않았고, 그 피눈물 나는 적응의 세월 끝에 마침내 반려견이라는 이름을 얻어냈습니다.

 

 고양이의 오디세이는 한층 더 드라마틱합니다. 약 1만 년 전 농경 사회가 시작되며 곡물창고의 쥐를 잡기 위해 인간 곁으로 온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곡식을 지켜주는 신성한 존재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러나 흑사병이 창궐해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사라져가던 중세 유럽시대의 묘생은 잔혹한 수난사로 변합니다. 검은 털을 가졌다는 이유와 새벽녘에 활동하는 야행성의 본능 때문에 마녀의 하수인이라 불리며 불길한 징조로 모함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수백만 마리의 고양이가 화형당하거나 학살당하는 핍박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의 개체 수 감소는 쥐의 폭발적인 증가와 전염병의 창궐이라는 또 다른 재앙으로 돌아왔고 인간은 다시금 고양이의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야생의 독립성을 유전자에 담은 채로 참혹한 오해와 학대의 시대를 버텨낸 고양이는 마침내 현대인의 외로움을 치유하는 정서적 동반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간의 오만과 오해로 인한 핍박 속에서도 스스로의 본성을 바꾸고 상처를 견디며 우리에게 다가와 준 아이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 수만년의 오디세이가 끝난 지점은 다름 아닌 우리 집과 가족의 따뜻한 품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