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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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9일 “문해력의 위기” <김 현 철 죽호학원 이사장>

 요즘 우리는 하루종일 글 속에서 살아갑니다. 휴대전화 알림창에는 문자 메시지, 짧은 뉴스와 게시글이 쉴 새 없이 올라옵니다. 각종 영상 속에서도 자막이 끊이지 않고 흐릅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어느 시대보다 글을 많이 읽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다릅니다. 교사가 “방금 읽은 단락을 자기 말로 설명해볼까?”라고 물으면, 아이들 중 상당수가 시선을 피하거나, 한두 문장 말하다가 멈춰 버립니다. 분명 소리를 내어 읽었는데, 머릿속에는 아무 내용도 남지 않은 상태인 것입니다.

 

 실제 한 국어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글의 주제 문장을 찾는 활동에서 많은 학생이 가장 짧은 문장을 주제라고 골랐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짧으니까 중요한 말 같아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짧은 문장, 짧은 영상, 짧은 콘텐츠에 익숙해진 시대가 만든 풍경입니다. 

 

 문해력은 단지 국어 성적을 좌우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글 속에 숨은 의도를 읽어내고,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며, 다른 사람의 감정과 입장을 고려해 보는 힘입니다. 그래서 교육에서는 문해력을 ‘모든 학습의 기초 체력’이라고 부릅니다. 수학 문제도, 과학 탐구 보고서도, 사회 교과서의 토론 과제도 결국은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힘에서 시작됩니다.

 

 문해력이 약해지면 문제는 교실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글의 맥락을 충분히 읽지 못하면 타인의 말을 쉽게 오해하고, 자극적인 제목과 짧은 영상에만 끌리기 쉽습니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걸러내지 못하면 허위 정보와 극단적인 주장에 흔들릴 가능성도 커집니다. 읽지 않는 사회는, 결국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회는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증폭시키기 쉽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죽호학원의 전통을 떠올립니다. 우리 학원은 예로부터 ‘책 읽는 학교’의 학풍을 소중히 지켜왔습니다. 2024학년도 금호중앙여고가 교육부로부터 독서교육 최우수상을 받았고, 금호고는 2024년에 이어 2025년까지 2년 연속 독서교육 우수학교로 선정되었습니다. 저는 이 상을 자랑으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문해력의 위기 시대에, 학교가 먼저 해법을 제시해야한다는 징표와 의무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단순히 “책을 많이 읽어라”는 구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한 문단을 정해 놓고, 모르는 단어 밑줄을 그어가며 뜻을 스스로 찾아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글쓴이의 의도는 무엇인지, 내 생각은 어디에서 동의하고 어디에서 다른지, 질문을 만들어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친구와 함께 같은 글을 읽고 서로의 해석을 나누는 토론 수업 속에서 문장은 비로소 ‘살아 있는 생각’으로 바뀝니다.

 

 저는 학교법인 죽호학원의 이사장으로서 “문해력의 위기”라는 말을 거창한 담론으로만 두지 않으려 합니다. 교실 한 칸, 도서관 한 켠, 가정의 식탁 위에서 오늘 한 줄 더 읽고, 한 문장 더 곱씹어 보는 문화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천천히, 깊이 읽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배우고, 성장하고, 함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은 어떤 문장을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깊이 읽어 보고 싶으신가요? 그 한 문장을 붙잡는 순간,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도, 이 사회의 생각하는 힘도 다시 단단해질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