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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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1일 “봉사, 우리가 떠난 뒤에도 괜찮다” <김성민 전남대학교 소아정형외과 교수>

 올해 1월 1일부터 6일까지, 저희 팀은 방글라데시에서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실제 진료와 수술은 약 3일 동안 진행됐고, 그동안 뇌성마비나 골절 등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던 환자 열다섯 분 정도에게 모두 쉰 건이 넘는 수술적 치료를 제공했습니다. 수술에 필요한 물품과 앞으로의 진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발전 기금도 함께 전달하고 왔습니다.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분들에게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 결과로 환자와 가족이 웃는 모습을 보는 일은 의사로서 분명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입니다. 발이나 손의 변형으로 한 번도 제대로 걷지 못했고, 무언가를 잡아 본 기억조차 없던 분들이 치료를 통해 일상의 가능성을 조금씩 되찾는 모습을 보면 이 일이 참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오늘은 ‘남을 돕는 일은 참 좋은 일이다’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남을 돕는 일, 봉사하는 일의 방향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이 방글라데시 의료 봉사는 2004년에 처음 시작되어 이번 활동까지 따지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그동안 수술적 치료는 물론이고, 수술 도구와 장비, 여러 형태의 재정적 지원이 꾸준히 제공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낀 것은, 이 봉사가 단순한 ‘직접적인 도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함께 사람을 키우는 일이 같은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현지에서는 간호 인력을 선발해 해부학과 생리학 같은 기초 교육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병동과 수술실을 둘러보며 그 결과는 자연스럽게 드러났습니다. 회진을 돌 때도, 수술을 준비하고 진행할 때도 현지 간호사와 수술장 보조 인력들은 각자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차분하면서도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의 다음 동작을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장면은 현지 정형외과 의사가 이 병원에서 실제로 근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온 의료진이 모든 것을 맡는 구조에서 이제는 현지 의료진이 중심이 되는 구조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외래 접수처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들이 진료를 받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도움을 기다리는 공간이라기보다 스스로 돌아가고 있는 의료 현장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요즘도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도움의 모습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달라질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도움이 계속해서 같은 도움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방식인지, 아니면 언젠가는 도움 없이도 이어질 수 있는 길로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문득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떠나간 그 마을에서,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의사가 탄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적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봉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계속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서게 되는 것. 우리가 떠난 뒤에도 그 자리가 비지 않는 것. 방글라데시에서 보았던 변화들도 바로 그런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남을 돕는 일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오래 가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 스스로가 조금씩 필요 없어질 준비를 하는 과정이 함께 따라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