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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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1일 “광주·전남 통합, ‘경험의 설계’가 지역의 생존 전략” <한은미 전남대 화학공학과 교수>

 세상 참 좋아졌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지구 반대편 낯선 땅도 두렵지 않더군요. 기술 앞에선 언어의 장벽도, 정보의 부족도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실감했습니다. 이제 여행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나의 취향과 데이터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을요. 수많은 선택지 중 나에게 맞는 경험을 골라내 정교하게 잇는 능력이 여행의 질을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오니, 광주와 전남은 ‘행정통합’이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서 있더군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절박한 생존 전략입니다.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전 세계를 손바닥 보듯 하는 이 시대에, 왜 우리는 바로 옆 동네인 광주와 전남의 매력을 잇는데는 이토록 서툰 걸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건물을 새로 짓는 예산보다, 이미 우리 곁에 있는 흩어진 자원들을 하나의 선으로 잇는 ‘경험의 설계’입니다. 익숙한 충장로 독립서점에서 고흥 바닷가의 파도소리로, 양림동의 디저트와 해남 양조장의 술향기로, 그리고 목포의 재즈까지, 이 파편화된 일상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내는 ‘연결된 하루’가 필요합니다.

 

 이 장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일 때, 소상공인들은 활력을 얻고 청년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을 이유를 찾습니다. “사람이 즐거워야 머물고, 머물러야 돈이 돌며, 그래야 사람이 남습니다.” 정교한 경험 설계는 단순히 관광객을 부르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 청년들을 붙잡는 가장 강력한 ‘정서적 방어선’이 됩니다.

 

 도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만 가슴 뛰는 ‘경험’으로 기억됩니다. 안내 책자보다, 기웃거리며 들여다본 골목의 벽화, 허름한 식당의 싱싱한 바다 맛, 장터 한복판의 사람내음이 우리를 다시 그 도시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행정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주인공인 시민과 청년들이 더 잘 보이고,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돕는 ‘무대장치’여야 합니다. 광주와 전남의 통합이 단순히 지도 위의 경계선을 지우는 일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것은 우리 삶의 동선을 부드럽게 잇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통합의 진짜 목적은 권한의 확대가 아니라,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에게 더 넓고 깊은 ‘행복의 동선’을 열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