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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2일 “삶의 풍경을 완성하는 빛과 그림자” <고영엽 조선대학교 의대 교수>
우리의 인생을 거대한 캔버스 위에 그리는 풍경화에 비유해 봅니다. 어떤 날은 화창한 햇살 아래 빛나는 밝은 색채가 채워지며 기분 좋게 시작하지만, 어떤 날은 비를 가득 머금은 짙게 낀 먹구름 그림자처럼 묵직한 어둠이 번져 당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인생이라는 긴 풍경을 돌아보면, 진정 깊이 있는 작품은 밝음과 맑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의 경계를 파고들며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 삶의 풍경은 그 모든 날들이 모여 입체적인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이 변화무쌍한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첫 번째 지혜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Hoc quoque transibit)”라는 경구입니다. 유대교의 전설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한 왕에게는 자만을 경계하게 하고, 절망에 빠진 이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던 이 말은 우리 삶의 가장 강력한 균형추이자 평정심의 열쇠입니다. 우리가 이룬 성취는 영원히 머무는 정점이 아니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습니다. 성취의 단맛에만 매몰되는 순간 성장은 멈추고 자만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함을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마주하는 시련과 절망 또한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의 깊은 이치는 ‘가장 밝은 빛은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잉태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지금 겪는 아픔은 삶의 불필요한 겉치레를 깎아내고 가장 본질적인 자아를 마주하게 하는 조각칼과 같습니다. 깊은 골짜기가 있어야 산봉우리가 드높아 보이듯, 고단한 순간들은 역설적으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증명해 줍니다. 짙은 어둠이 앞을 가린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가장 눈부신 빛을 맞이하기 직전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가질 믿음은 ‘모든 계절이 저마다의 이유로 정당하다’는 사실입니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 없이 봄의 싹은 강인해질 수 없으며, 여름의 치열한 태양 없이 가을의 결실은 여물지 못합니다. 인생의 고난이라 치부되는 ‘침잠’의 시간은 사실 다음 도약을 위해 내면의 에너지를 응축하는 ‘동면’의 시간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이 순환의 섭리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일희일비하는 대신 평정심의 궤도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이는 맑은 날에는 먼 곳을 조망하며 나아갈 길을 가다듬고, 비바람 치는 날에는 처마 밑에서 젖은 마음을 말리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좋은 일’이 찾아왔을 때 교만하지 않고, ‘나쁜 일’이 닥쳤을 때 절망하지 않는 마음, 그 단단한 중심이야말로 거친 생의 바다를 항해함에 있어 가장 신뢰할 만한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결국 삶이란 맑음과 궂음이 교차하는 날씨와 같고,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한 편의 서사시입니다. 밝은 실로만 짜인 천은 화려하나 가벼워 보이고, 어두운 실이 정교하게 섞인 천은 중후한 품격을 자아냅니다. 빛은 그림자를 통해 깊어지고, 그림자는 빛을 통해 의미를 얻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삶의 날씨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불원천불구인(不怨天不尤人)”이라고 하신 공자(孔子)의 말씀처럼, 세상을 원망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합니다. 그 흐름 속에 몸을 맡기되, 내면의 강인함과 긍정 마인드로써, 매 순간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며, 우리 삶의 아름다운 무늬를 완성해 나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