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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6일 “재미로 소비되는 죽음,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허승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전쟁 영화나 게임을 즐기면서, 적들의 죽음에 희열과 재미를 느낀 적이 아마 있으실 겁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가 평소에 너무 많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소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타인의 죽음을 ‘재미’로 소비하게 되었을까요? 인간에게 가장 강한 감정 자극은 사랑도, 분노도 아닙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은 두려움, 긴장, 생존 욕구 등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건드립니다. 그 죽음이 이제 자본과 결합하여 ‘몰입을 끌어올리는 기술’이 되었습니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잔혹하게 죽을수록 몰입의 강도도 강해집니다. 콘텐츠는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경쟁합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강한 자극으로 더 강한 반응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 결과 죽음은 철학적 윤리적 질문이 아니라, 흥행을 위한 연출 기법이 되었습니다.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속 전쟁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도시가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모릅니다. 그들의 가족도 모릅니다. 그들의 삶도 모릅니다. 그들은 단지 영화의 배경일 뿐입니다. 게임에서는 더 분명합니다. 적의 죽음은 곧 나의 점수입니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통과 장치일 뿐입니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은 이렇게 학습됩니다. 처음에는 모두 놀라지만, 반복되면 익숙해집니다. 익숙해지면 무감각해집니다. 무감각, 여기가 가장 위험한 지점입니다. 물론 폭력적인 콘텐츠를 본다고 해서 곧바로 모두 폭력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죽음을 무감각하게 소비할 때,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은 조금씩 쇠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폭력적인 영화와 게임을 금지하는 것이 해답일까요? 쉬운 답처럼 보이지만, 불가능하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폭력의 존재가 아니라 그 폭력에서 어떤 질문과 답을 찾느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못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보게 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보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먼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합니다. 죽음의 장면이 누구의 관점에서 무슨 목적으로 연출되었는지, 이 인물의 삶은 왜 사라져야만 했는지 등, 죽음의 의도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비판적으로 보는 힘은, 죽음을 재미로 소비하는 사람에서, 죽음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인간으로 바뀌게 해줍니다.
둘째, 죽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지난 칼럼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죽음을 성찰하지 않는 사회는 죽음을 재미로 소비하게 됩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상실이 무엇인지, 애도가 무엇인지 배우는 과정이 있다면, 우리는 오락 속 죽음도 다르게 바라보는 안목이 생깁니다.
셋째, 공감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화에서 죽은 자들의 삶과 그 가족의 상실감을 생각해 보게 하는 것입니다. 공감은 윤리의 시작입니다. 이름과 삶을 되찾아 주는 순간, 죽은 자는 숫자가 아닌 사람이 됩니다.
넷째, 대안적 문제 해결 훈련이 필요합니다. 폭력은 갈등을 해결하는 대안이 아닙니다. 비폭력적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면서도 충분히 몰입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더 강한 자극을 제공할 것입니다. 플랫폼은 클릭을 원하고, 시장은 수익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왜 이 콘텐츠는 이렇게 많은 죽음을 소비하게 만드는가?” “나는 여전히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가?” 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단순한 죽음의 소비자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사유하는 존재로 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 영화 속 한 장면, 우리가 플레이한 게임 속 한 순간을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그 안에서 사라진 이름 없는 존재들을 잠시라도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이미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죽음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재미로 소비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그 변화는 시장도, 플랫폼도 아닌 교육과 성찰에서 시작됩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