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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4일 “400년 나무 아래 피어난 예술공간,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변길현 큐레이터>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변길현입니다.
여러분, 잎사귀 끝마다 뾰족한 가시를 세우고 있지만, 겨울이 되면 가슴 한가운데 붉은 열매를 품어내는 나무를 아시나요? 바로 '호랑가시나무'입니다. 광주 양림동 골목을 지나 선교사 묘역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무려 400년의 세월을 견뎌낸 웅장한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됩니다.
높이가 6미터를 훌쩍 넘는 이 거목은 광주의 어제와 오늘을 지켜본 산증인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이지요. 재미있는 건, 이 나무가 어릴 때는 짐승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잎사귀 끝에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지만, 커갈수록 가시가 서서히 마모되어 마침내 둥글고 순한 모습으로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세상을 따뜻하게 품어내는 이 나무 아래, 참 아름다운 공간 하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호랑가시나무 창작소'입니다.
이곳은 원래 100여 년 전, 타국 땅 광주를 찾아와 배고프고 아픈 이들을 돌보았던 선교사들이 머물던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사택이었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자칫 잊힐 뻔했던 이 역사적 공간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이가 있었는데요. 바로 양림동의 문화적 가치를 오랫동안 발굴해 온 문화기획자, 정헌기 대표입니다.
정헌기 대표는 오래된 사택의 역사성을 지키면서도, 이 고즈넉한 숲속 공간을 지역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숨 쉬는 생동감 넘치는 예술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2014년, 붉은 벽돌 사택은 국내외 작가들이 머물며 창작에 몰두하는 레지던시이자 전시 공간인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창작소 주변을 천천히 걷다 보면, 붉은 벽돌 사이로 비쳐 드는 나뭇잎 그늘과 숲이 뿜어내는 청량한 숲의 향기가 온몸을 감싸 안습니다. 막힌 벽면 위주의 도심 미술관과 달리, 이곳에서는 통창 너머의 푸르름과 작품을 함께 감상하게 되는데요. 100여 년 전 이 언덕에서 헌신과 나눔을 실천했던 선교사들의 온기가, 정헌기 대표의 혜안을 거쳐, 지금 호랑가시나무창작소는 광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인상깊게 생각하는 미술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시가 되거나 또는 다른 가시에 상처받는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 양림동 언덕의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를 가만히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400년 숲이 건네는 깊은 위로 속에 청년작가들의 미술작품이 전시된 붉은 벽돌집을 거닐다 보면, 내 마음 속 가시나 상처도 호랑가시나무의 잎사귀처럼 둥글고 부드럽게 다듬어지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큐레이터 변길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