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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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3일 “수능의 계절,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내몰지 않으려면” <김 현 철 죽호학원 이사장>

 대한민국의 하늘길도 막아버리는 수능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매년 수능 영어 듣기평가 시간에는 전국 공항의 이·착륙이 35분간 멈춰 섭니다. 비행기는 3km 상공에서 대기하고, 그 시간대 항공편은 일제히 조정되지요. 한 나라가 청소년의 한 날, 한 시험을 위해 숨을 고르는 풍경입니다. 

 

 그런데 최근 입시 지형의 변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입시를 위해 자퇴와 검정고시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4년제 대학 신입생 중 검정고시 출신 규모가 역대 최고치를 찍었고, 이른바 SKY에서도 검정고시 출신 합격자가 최근 8년 새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내신 경쟁에서 밀리면 학교를 떠나 ‘검정고시→정시’로 경로를 바꾸는 전략이 흔해졌다는 뜻입니다. 수능에 응시하는 검정고시 출신 비율도 상승세입니다. 2025학년도 수능 접수자 중 검정고시생은 2만여 명, 전체의 약 3.8%라는 집계가 나왔습니다. 숫자는 냉정합니다. “학교 안”보다 “학교 밖”에서 입시를 설계하는 10대가 분명히 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고득점을 위해 검정고시를 재응시하는 현실도 존재합니다. 일부에서는 더 높은 점수를 얻을 때까지 반복 응시가 이뤄져 제도의 취지와 형평성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제도는 언제나 선의만을 전제로 작동하지 않기에, 이런 ‘빈틈’은 곧 아이들의 선택을 왜곡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교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시험을 잘 치르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 평균을 맞추기 위해 개개인의 속도를 깎아내는 공장? 아니면 실패할 자유를 보장하고, 서로의 다름을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저는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떤 인연은 때로 운명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했고, 45년 뒤 금호고의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교문을 나서던 소년이, 반세기 뒤 같은 교문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돌아온 겁니다. 제가 가장 먼저 묻고 싶은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이 학교는 지금, 아이들의 내일을 지키고 있는가.” 시험 성적이 아이들의 전부가 아니라면, 학교는 성적 바깥의 세계—관계, 호기심, 회복탄력성, 시민성—을 길러주는 둥지가 되어야 합니다. 흔히 마사이족의 속담으로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입시 전략의 최적화가 ‘빨리 가는 법’을 알려줄지 모릅니다. 그러나 ‘멀리 가는 법’ '함께 가는 법'은 학교 공동체가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가 자기 속도로 배워도 괜찮고,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곳. 그 배움의 무대가 바로 학교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기성세대가 만든 제도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쫓겨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제도가 아이를 떠밀면, 아이는 제도 바깥에서 더 ‘효율적인’ 길을 찾습니다. 그 순간 공교육은 신뢰를 잃습니다. 제도의 언어가 ‘선별’로 기울어질 때, 학교의 언어는 ‘포용’으로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평가 잣대를 다양화하고(과정·포트폴리오·프로젝트), 학년·학기의 벽을 유연하게 낮추고(맞춤형 이수), 실패를 안전하게 허용하는 교실 문화를 복원해야 합니다. 수능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수능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길이 멈추는 그 35분 동안, 우리도 함께 멈춰 생각해 봅시다. 내 아이, 우리 학생들이 왜 학교를 떠나는지, 어떻게 다시 학교가 ‘함께 가는 길’이 될 수 있을지를.

 

 마지막으로, 오늘 마이크 앞에 선 금호고의 졸업생이자 현 이사장으로서 다짐합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시험에 맞추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에 맞춰 제도를 바꾸는 곳이어야 한다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함께’의 시작은, 아이들을 학교 안에서 품어내겠다는 우리의 결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