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의견

☞☞☞ 여기는 '제 2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열리는 울산광역시입니다. 등록일 : 2006-08-28 00:00

제 글이 게시판 특성(揭示板 特性)에 다소(多少) 맞지 않아도 중도(中道)에 역설적(逆說的)으로 예쁘디 예쁜 ‘장애(障碍)’가 생긴 사람의 푸념 섞인 넋두리로 간주(看做)하시고, 시간(時間)이 허락(許諾)되시는 분은 제 글을 읽어 보실 것을 감히 청(請)하며 게시(揭示)하니 넓으신 아량(雅量)의 이해심(理解心)을 머리 숙여서 부탁(付託) 드립니다. [-.-] [_._][-.-][^_^] 이 글은 지난 ‘1999년(年) 09월(月) 05일(日)’에 몽중(夢中)에서 조차도 전혀 짐작(斟酌)하지 못했던 불의(不意)의 사고(事故)로 말미암아 원치 않았던 반어적(反語的)으로 예쁘디 예쁜 ‘장애(障碍)’라는 부산물(副産物)이 생겨 ‘2001년(年) 01월(月) 30일(日)’에 ‘장애인(障碍人)’으로 등록(登錄)하면서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라는 속담(俗談)이 있는 것처럼 ‘장애(障碍)’가 없을 당시(當時)에는 거의 인지(認知)하지 못하다가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으로 예쁘디 예쁜 ‘장애(障碍)’라는 부산물(副産物)이 생기고 난 후(後), 뒤늦게나마 직면(直面)한 현실(現實)을 나름대로 직시(直視)해 보니 ‘장애(障碍)와 관련(關聯)된 문제점(問題點)’ 특히, ‘장애(障碍)와 관련(關聯)된 용어(用語)의 문제점(問題點)’들이 보이기 시작(始作)하여, 이것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어렴풋이 새삼스레 느끼고 깨달으며 인지(認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용어(用語)로는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ㅂㅕㅇㅅㅣㄴ(病身)이나 불구자(不具者)나 장애자(障碍者)나 장애우(障碍友)······ 등’의 부적합(不適合)한 용어(用語)보다는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가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하다는 주장(主張)과 더불어, 이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는 ‘정상인(正常人)이나 일반인(一般人)이나 일반(一般)······ 등’의 부적합(不適合)한 용어(用語)보다는 ‘비장애인(非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가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하다는 주장(主張)을 전개(展開)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을 전개(展開)하는데 있어 지난날, 불의(不意)의 사고(事故)로 말미암아 생긴 반어적(反語的)으로 예쁘디 예쁜 장애(障碍)라는 부산물(副産物)과 경제적(經濟的), 사회적(社會的)으로 많은 제약(制約)이 수반(隨伴)되기에 이런 여건(與件)들을 고려(考慮)하고 심사숙고(深思熟考)하여 고심(苦心), 고심(苦心)······ 고심(苦心)한 끝에 내린 잠정적(暫定的)인 결론(決論)이 당시(當時) 제 처지(處地)를 헤아려 행(行)할 수 있는 방안(方案) 가운데, 가장, 가장······ 가장 좋다고 생각된 방법(方法)이 인터넷(Internet)이라는 문명(文明)의 이기(利器)를 이용(利用) 아니 활용(活用)해서 여러 사이트(Site) 특히, 파급효과(波及效果)가 가장, 가장······ 가장 크다고 판단(判斷)된 방송국 사이트(a broadcasting station site)에 앞에서 서술(敍述)한 내용(內容)을 담은 글을 게시(揭示)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런 일을 행(行)하던 가운데, 아주, 아주······ 아주 우연(偶然)한 기회(機會)에 저에게 천재일우(千載一遇)와 같은 ‘MBC 문화방송(文化放送) / 시사 교양(時事 敎養) / 우리말 나들이’에서 ‘우리말 지기’를 모집(募集)한다는 공고(公告)를 접(接)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참여(參與)해 이와 같은 주장(主張)을 전개(展開)하면, 현재(現在) 제가 행(行)하고 있는 방법(方法)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제 주장(主張)을 전(傳)할 수 있겠다는 어디까지나 주관적(主觀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소신(所信)의 나만의 짧디 짧은 판단(判斷)에서 이에 응모(應募)하였는데, 운(運)이 좋아 제 글이 채택(採擇)되어 제 거주지(居住地)인 ‘울산광역시(蔚山廣域市)’의 생태하천(生態河川)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아니 이미 다시 살아난 ‘태화강(太和江) 둔치’에서 『 2004년(年) 04월(月) 24일(日)에 촬영(撮影)하고 2004년(年) 04월(月) 30일(日)에 방송(放送)』되었습니다. 이 방송(放送)에 참여(參與)하려고 응모(應募)하는 곳에 ‘장애(障碍)와 관련(關聯)된 용어(用語)의 문제점(問題點)’을 게시(揭示)할 당시(當時)에는 비록, 어렴풋이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새삼스레 느끼고 깨달으며 인지(認知)하게 된 ‘장애(障碍)와 관련(關聯)된 용어(用語)의 문제점(問題點)’이었지만, 저 나름대로는 주관적(主觀的)인 잣대는 배제(排除)하고 객관적(客觀的)인 잣대로서만, 체계적(體系的)이고 논리적(論理的)으로 계시(啓示)한다고 했었는데, 현시점(現時點)에서 되돌아 보니 미흡(未洽)하고 누락(漏落)된 부분(部分)이 너무, 너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아 오늘날 미흡(未洽)한 부분(部分)은 보완(補完)하고 누락(漏落)된 부분(部分)은 추가(追加)하는 과정(過程)을 거듭, 거듭······ 거듭 반복(反復)하면서 다시 작성(作成)하는 글입니다. 이렇게 서두(書頭)에 다소 장황(多少 張皇)한 설명(說明)하는 글을 먼저 덧붙이게 된 까닭은 다음에 게시(揭示)하는 글이 저 혼자만의 개인적(個人的)이고 주관적(主觀的)인 사고(思考)와 주장(主張)이 아니라, 그만큼 공신력(公信力) 있는 ‘지상파방송(地上波放送)인 MBC 문화방송(文化放送) 그것도 시사 교양(時事 敎養)’ 가운데에서도 우리말과 관련(關聯)된 프로그램(program)인 ‘우리말 나들이’에서도 인정(認定)한 만큼 신뢰(信賴)할 수 객관적(客觀的)이고 논리적(論理的)인 내용(內容)이라는 것을 표방(標榜)하고 싶은 심정(心情)에서 이렇게 장황(張皇)한 설명(說明)을 덧붙인 것이니 이 부분(部分)에 있어서 불필요(不必要)한 곡해(曲解)는 없었으면 하는 게 노파심(老婆心)에서 생겨난 기우(杞憂)와 동일(同一)한 아니 유사(類似)한 저만의 작디작은 바람입니다. 또한, 다음에 게시(揭示)하는 글과 동일(同一)한 아니 유사(類似)한 내용(內容)이 그곳 즉(卽), ‘imbc.com’에도 게시(揭示)되어 있는 것을 확인(確認)할 수 있을 것인데, 그곳에 게시(揭示)되어 있는 글은 제가 직접(直接) 손수 게시(揭示)한 글이 아니라 지난날 ‘MBC 문화방송(文化放送) / 시사 교양(時事 敎養) / 우리말 나들이에 우리말 지기’로 참여(參與)하고자 게시(揭示)했던 제 글을 ‘우리말 나들이의 작가’가 다시 그곳에 게시(揭示)한 것입니다. 또한, 이 글이 게시(揭示)되어 있는 곳은 누구나 자유(自由)롭게 글을 게시(揭示)하거나, 수정(修訂)하거나, 삭제(削除)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말 나들이’의 작가(作家)만이 게시(揭示)하거나, 수정(修訂)하거나, 삭제(削除)할 수 있는 고유권한(固有權限)이 있는 곳입니다. 이런 이유(理由)로, 이 글의 작성자(作成者)는 ‘제작진’이라는 이름으로 게시(揭示)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 믿어 의심(疑心)하지 않지만, 그래도 혹(或) 제 글에 대한 진위(眞僞)를 확인(確認)하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참고(參考)에서 진의 여부(眞意 與否)를 확인(確認)할 수 있으니 이것을 참고(參考)로 삼으실 것을 감히 머리 숙여서 부탁(付託) 드립니다. [-.-] [_._][-.-][^_^] 『 ※ 참고(參考) : 다음과 동일(同一)한 아니 유사(類似)한 글이 게시(揭示)된 곳의 인터넷 주소(internet address)는 http://www.imbc.com/broad/tv/culture/hangul/hangul/index.html이며, 이 글의 번호(番號)는 「 134번(番) 」 이며, 제목(題目)은 「 시청자 우리말 지기 ‘이호성’님의 글입니다. (장애 관련 용어) 」입니다. 』 ☞☞☞ ‘장애(障碍)와 관련(關聯)된 용어(用語)’에 대해서······. ‘다소 두서(多少 頭緖)없고 다소(多少) 긴 방백(傍白)의 글’ ☞☞ ‘용어문제(用語問題)의 중요성(重要性)’ 용어문제(用語問題)를 적지않은 사람들 아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가볍게 여기며 허섭스레기인 양 아무렇게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덤부로 마구 취급(取扱)하는 경향(傾向)이 없지 않아 있으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不幸 中 多幸)일 것이다. 그러나 애석(哀惜)하게도 실상(實狀)은 이렇지 않고 용어문제(用語問題)를 가볍게 여기며 허섭스레기인 양 아무렇게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덤부로 마구 취급(取扱)하는 경향(傾向)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인 것이 씁쓸한 현실정(現實情)이다. 하지만, 용어문제(用語問題)를 가볍게 여기며 허섭스레기인 양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덤부로 마구 간주(看做)할 문제(問題)만은 절대, 절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된다. 나는······. 용어문제(用語問題)가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중요(重要)하며 또한,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소중(所重)한가는 이 글을 대하는 사람도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疑心)하지 않는다. 하지만, 혹여(或如)나 하는 기우(杞憂)와 같은 나만의 작디작은 노파심(老婆心)에서 앞 문구(文句)에 대한 보험(保險)을 들어 두는 심정(心情)으로 이에 대한 이해(理解)를 돕는 취지(趣旨)에서 용어문제(用語問題)의 중요성(重要性)을 역설(力說)하는 보잘 것 없고 미천(微賤)한 나름의 작디작은 지식(知識)을 게시(揭示)하는데 그 내용(內容)은 다음과 같다. ⇒ ‘[일(日)/한(韓) 월드컵(Japan/Korea World-Cup)]이 아닌 [한(韓)/일(日) 월드컵(Korea/Japan world-Cup)]’ 지난 ‘2002년(年)’에 성공적(成功的)으로 치른 ‘[일(日)/한(韓) 월드컵(Japan/Korea World-Cup)]이 아닌 [한(韓)/일(日) 월드컵(Korea/Japan World-Cup)]’에서 ‘경제적 실리(經濟的 實利)냐! 대의적 명분(大義的 名分)이냐!’의 기로(岐路)에서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은 ‘경제적 실리(經濟的 實利)가 아닌 대의적 명분(大義的 名分)’을 선택(選擇)해 ‘[일(日)/한(韓) 월드컵(Japan/Korea World-Cup)]이 아닌 [한(韓)/일(日) 월드컵(Korea/Japan World-Cup)]’이라는 명칭(名稱)을 얻었고 이에 상응(相應)하는 대가(對價)로 경제적 실리(經濟的 實利)에 해당(該當)하는 ‘[일(日)/한(韓) 월드컵(Japan/Korea World-Cup)]이 아닌 [한(韓)/일(日) 월드컵(Korea/Japan World-Cup)]’의 결승전(決勝戰)을 ‘일본 측(日本 側)’에 양보(讓步)했었다. 이런 것을 보면 용어문제(用語問題)가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중요(重要)하며 또한,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소중(所重)한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고 깨달으며 인지(認知)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섬 독도(獨島)’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섬 독도(獨島)’를 가깝고도 머~~~언 이웃 국가(國家)인 ‘일본 측(日本 側)’에서는 자국(自國)의 영토(領土)라는 말도 되지 않는 얼토당토않은 억지 논리(抑止 論理)와 주장(主張)을 전개(展開)하면서 ‘죽도(竹島) 즉(卽), 다케시마(TAKESHIMA = たけしま)’라고 칭(稱)하고 있는 적합(適合)하지 못한 행위(行爲)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행위(行爲)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작태(作態)’를 보면서 용어문제(用語問題)가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중요(重要)하며 또한,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소중(所重)한가를 새삼스레 느끼고 깨달으며 인지(認知)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바다 동해(東海)’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바다 동해(東海)’를 다른 국가(國家)에서 일본해(日本海)라고만 표기(表記)하고 있는 적합(適合)하지 못한 행위(行爲)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행위(行爲)를 보면서 용어문제(用語問題)가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중요(重要)하며 또한,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소중(所重)한가를 새삼스레 느끼고 깨달으며 인지(認知)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렇듯 용어문제(用語問題)는 우리 인간사(人間事)에 있어서 가장, 가장······ 가장 중요(重要)하며 또한, 가장, 가장······ 가장 소중(所重)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기에 게시(揭示)하는 ‘장애(障碍)와 관련(關聯)된 용어(用語)’에 대한 글이다. ☞☞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용어(用語)에 대해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용어(用語)로 가장(?) 먼저 대두(擡頭)한 용어(用語)는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그것도 너무, 너무······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ㅂㅕㅇㅅㅣㄴ(病身)’이라는 용어(用語)였다. 이 ‘ㅂㅕㅇㅅㅣㄴ(病身)’이라는 용어(用語)도 처음에는 그냥 단순(單純)히 ‘병(病)든 사람’을 칭(稱)하던 용어(用語)였으나 “인간(人間)의 용어(用語)는 여타동식물(餘他動植物)처럼 생명력(生命力)을 지니고 있어 시대(時代)의 흐름에 따라 다소(多少) 변한다.”라는 말이 존재(存在)하듯이 이 ‘ㅂㅕㅇㅅㅣㄴ(病身)’이라는 용어(用語)는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그것도 너무, 너무······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했다. 현재(現在) 우리가 사용(使用)하고 있는 ‘표준어(標準語)’의 정의(定義)만 보아도 이와 동일(同一)한 아니 유사(類似)한 뜻 즉(卽), “인간(人間)의 용어(用語)는 여타동식물(餘他動植物)처럼 생명력(生命力)을 지니고 있어 시대(時代)의 흐름에 따라 다소(多少) 변한다.”라는 뜻이 내포(內包)되어 있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 ※ 참고(參考) : ‘표준어(標準語)’ 표준어 규정 제1항 의거(標準語 規定 第一項 依據) [명사] 한 나라에서 공용어(公用語)로 쓰는 규범(規範)으로서의 언어(言語). 의사소통(意思疏通)의 불편(不便)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全 國民)이 공통적(共通的)으로 쓸 공용어(公用語)의 자격(資格)을 부여(附與)받은 말로, 교육적(敎育的)·문화적(文化的)인 편의(便宜)를 위하여 한 나라의 표준(標準)이 되게 정(定)한 말.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은 교양(敎養)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現代) 서울말로 정(定)함을 원칙(原則)으로 한다. ≒ 표준(標準)말. 대중(大衆)말. ⇔ 사투리. 』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용어(用語)로 가장(?) 먼저 대두(擡頭)한 용어(用語)는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그것도 너무, 너무······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ㅂㅕㅇㅅㅣㄴ(病身)’이라는 용어(用語)였고, 이 ‘ㅂㅕㅇㅅㅣㄴ(病身)’이라는 용어(用語) 다음에 대두(擡頭)한 용어(用語)는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불구자(不具者)’라는 용어(用語)다. 이 ‘불구자(不具者)’라는 용어(用語)도 처음에는 그냥 단순(單純)히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용어(用語)였으나,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했다. 『 ※ 참고(參考) :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용어(用語)였으나,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불구자(不具者)’라는 용어(用語)에서 ‘파생(派生)된 용어(用語)’가 ‘그런데’의 강(强)한 뜻으로 사용(使用)하고 있는 ‘~에도 불구(不拘)하고······’라는 설(說)이 항간(巷間)에 있다. 그런데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으로 내가 취(取)할 수 있는 모든(?) 방안(方案)을 통해서 확인(確認)한 바로는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용어(用語)였으나,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불구자(不具者)’라는 용어(用語)의 ‘불구(不具)’와 ‘그런데’의 강(强)한 뜻으로 널리 그리고 많이 사용(使用)하고 있는 ‘~에도 불구(不拘)하고······’라는 용어(用語)의 ‘불구(不拘)’는 앞 문구(文句)에서도 확인(確認)이 가능(可能)하듯이 상호 간(相互 間)에 한자(漢字)의 음(音)만 같고 뜻은 분명(分明)히 서로 다르다. 하지만, 만 손 상호 간(相互 間)에 한자(漢字)의 음(音)은 같고 뜻만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불구자(不具者)’라는 용어(用語)에서 ‘파생(派生)된 용어(用語)’가 ‘그런데’의 강(强)한 뜻으로 널리 그리고 많이 사용(使用)하고 있는 ‘~에도 불구(不拘)하고······’의 ‘불구(不拘)’가 아니라고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면(面)에서 부정(不定)할 수 없는 것이 사회적(社會的), 현실적(現實的)으로 당연(當然)한 이치 (理致)이기에 이에 수반(隨伴)된 가부가(可否可)는 혹여(或如),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바이다. 』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불구자(不具者)’라는 용어(用語) 다음에, 대두(擡頭)한 용어(用語)는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다. 『 ※ 참고(參考) : 북측(北側)에서는 지난 2003년(年) 6월(月) 18일(日)에 ‘장애자 보호법(障碍者 保護法)’을 제정(制定)하면서 법(法) 안에 ‘장애자 연맹(障碍者 聯盟)’이라는 용어(用語)를 명시(明示)했으며, 앞으로 ‘조선장애ㅈㅏ 지원협회(朝鮮障碍者 支援協會)’는 ‘장애자연맹(障碍者聯盟)’으로 기능(機能)을 강화(强化)할 계획(計劃/計畫)이 있는 것으로 전(傳)해지고 있다. 또한, 북측(北側)은 공식명칭(公式名稱)을 ‘조선불구자협회(朝鮮不具者協會)’에서 ‘조선장애자협회(朝鮮不具者協會)’로 변경(變更)했는데 이 ‘장애자보호법(障碍者保護法)’이 제정(制定)되기 전까지는 ‘조선불구ㅈㅏ지원협회(朝鮮不具者支援協會)’란 명칭(名稱)을 사용(使用)하였으며 이 ‘장애자보호법(障碍者保護法)’의 제정(制定)으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공식명칭(公式名稱)을 ‘불구자(不具者)’에서 ‘장애자(障碍者)’로 변경(變更)한 것으로 전(傳)해지고 있다. 』 그런데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도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비하(卑下) 내지 멸시(蔑視)하려는 너무, 너무…… 너무나도 나쁜 저의(底意)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에서 ‘장(障)’만을 탈락(脫落)시킨 후(後)에 ‘애자’라 칭(稱)하며 비하(卑下) 내지 멸시(蔑視)를 담아 비아냥거리고 있는 현실정(現實情)을 피(避)하고 싶지만 피(避)할 수 없고 외면(外面)하고 싶지만 외면(外面)할 수 없는 애달프고도 서글픈 현실태(現實態)다. 『 ※ 참고(參考) : 이 글을 대하는 사람들 중(中)에서도 한번(番)쯤은 다들 들어 봤을 것으로 사료(思料)된다. 이에 대한 예(例)로는 지난 ‘2002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America Utah State Oklahoma City)에서 개최(開催)된 제19회(第十九會) 동계 올림픽(Winter Olympics)’의 쇼트트랙(shorttrack)에서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김동성 선수(選手)’와 관련(關聯)된 ‘미국(美國)의 오노 선수(Ohno 選手)’를 비난(非難)하려는 지취(旨趣)로 ‘애자 오노’라고 칭(稱)하기도 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뻔뻔하고 양심(良心) 없는 짓을 하는 일을 반대(反對)하는 운동(運動)’이란 뜻으로 ‘오노즘(ohnosm), 오노이즘(ohnoism)’이라는 ‘신조어(新造語)가 파생(派生)’되기도 하였으니······. 』 더군다나,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적합(適合)하지 못한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에서 ‘자(者)’라는 한자(漢字)의 뜻은 예전(藝專)에는 ‘놈 자’이었다. 하지만, 이 ‘자(者)’라는 한자(漢字)가 비단(非但),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에서만 사용(使用)되었다면 아무 일 없었던 것인 양 유수(流水)처럼 그냥 흘러, 흘러······ 흘러 현시점(現時點)까지 왔을는지 이에 대한 여부(與否)는 현재(現在)의 나로서는 명확(明確)히 정의(定義)할 수 없지만 실제(實際)로는 이렇지 않았고 이 ‘자(者)’라는 한자(漢字)가 많은 용어(用語)들과 합성(合成)되어 사용(使用)되다 보니, 이와 관련(關聯)된 나쁜 말들이 항간(巷間)에 무수(無數)히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항간(巷間)에서 무수(無數)히 많이 생겨난 나쁜 말들을 잠식(蠶食)시키기 위한 일환책(一環策)으로 이 ‘자(者)’라는 한자(漢字)를 ‘인(人)’ – 사람 인’과 같은 뜻으로 유화(柔和)시켰다. 즉(卽), ‘자(者) – 놈 자’에서 ‘자(者) - 사람 자’로······.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 ‘자(者)’라는 한자(漢字)를 ‘사람 자’가 아닌 ‘놈 자’로 알고 있으며 또한, 이렇게 ‘놈 자’의 뜻으로 많이 사용(使用)하고 있는 적합(適合)하지 못한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현실정(現實情)이다. 더군다나, 일부(一部)의 인터넷 사이트(Internet site)와 일부(一部)의 옥편(玉篇)이나, 자전(字典)에서는 아직도 ‘사람 자’가 아닌 ‘놈 자’로 표기(表記)하고 있는 적합(適合)하지 못한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현실태(現實態)다. 이와 같은 내용(內容)을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정부(政府)에서는 잘 알고 있기에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한 뜻으로 변모(變貌)한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를 ‘법정용어(法定用語)’로 규정(規定)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 즉(事實 卽),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적합(適合)하지 못한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는 ‘비 법정용어(非 法定用語)’이고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한 뜻으로 변모(變貌)한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가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정용어(法定用語)’라는 사실(事實)을 알게 된 경위(經緯)는 다음과 같다. 지난날, ‘가정용 전화요금고지서(家庭用 電話料金告知書)’에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적합(適合)하지 못한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로 표기(表記)하던 것을 앞의 설명(說明)과 더불어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第二 建國 凡國民推進委員會, National Commission for Rebuilding Korea)’에서도 지난날,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용어(用語)로 ‘장애자(障碍者)’는 부적합(不適合)하고 ‘장애인(障碍人)’이 적합(適合)하다고 밝힌 바가 있으니 정정(訂定)해 달라는 민원(民願)을 인터넷(Internrt)이라는 ‘문명(文明)의 이기(利器)’를 이용(利用) 아니 활용(活用)해서 ‘청와대 신문고(靑瓦臺 申聞鼓)’에 건의(建議)하고 ‘가정용 전화요금고지서(家庭用 電話料金告知書)’에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볼 때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적합(適合)하지 않은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로 표기(表記)하던 것을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볼 때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한 용어(用語)인 ‘장애인(障碍人)’이란 용어(用語)로 정정(訂定)하는 과정(過程)에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볼 때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적합(適合)하지 않은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가 ‘비 법정용어(非 法定用語)’이고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한 뜻으로 변모(變貌)한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가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정용어(法定用語)’라는 사실(事實)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가끔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의 ‘법정용어(法定用語)’인 ‘장애인(障碍人)’ 당사자(當事者)도 자신(自身)을 칭(稱)하면서 가끔 ‘저는 장애(障碍)가 있는 장애자(障碍者)입니다.’라고 칭(稱)하는 것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접(接)할 수 있다. 이렇게 칭(稱)하는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의 ‘법정용어(法定用語)’인 ‘장애인(障碍人)’ 당사자(當事者)는 자기 자신(自己 自身)을 칭(稱)할 때 겸손(謙遜)의 의미(意味)로 ‘나’가 아닌 ‘저’로 칭(稱)하는 것과 동일(同一) 아니 유사(類似)한 의미(意味)로 알고 칭(稱)하는 것으로 사료(思料)되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약소국(弱小國)이라도 자국(自國)을 칭(稱)할 때는 강대국(强大國)과 동격(同格)으로서 ‘저희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라고 칭(稱)하는 것이 옳은 이치(理致)와 뜻은 일맥상통(一脈相通)할 것으로 사료(思料)되니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 즉(卽),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정용어(法定用語)’인 ‘장애인(障碍人)’ 당사자(當事者)는 자기 자신(自己 自身)을 칭(稱)할 때 ‘장애자(障碍者)’라고 칭(稱)하는 것을 자제(自制) 아니 절대, 절대······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에 대한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나만의 작디작은 바람이다. 『 ※ 참고(參考) :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다소(多少) 적합(適合)하지 못한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도 많이 사용(使用)되고 있는데 이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는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친구처럼 대하자!’라는 지취(旨趣)에서 사회계몽운동(社會啓蒙運動)을 목적(目的)으로 ‘호주(濠洲) =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에서 전개(展開)된 용어(用語)다.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는 1987년(年) 12월(月) 02일(日)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障碍友權益問題硏究所)’가 설립(設立)되면서 이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를 항간(巷間)에서 사용(使用)하기 시작(始作)된 것으로 전(傳)해지고 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는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1인칭 시점(一人稱 視點)이나, 2인칭 시점(二人稱 視點)이나, 3인칭 시점(三人稱 視點) 그 어떤 시점(視點)에서도 이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로 칭(稱)하는 것을 너무, 너무······ 너무나도 싫어하는 이가 많이 있는데 이렇게 너무, 너무······ 너무나도 싫어하는 소이(所以)를 정리(整理)하면 크게 아래의 두 유형(類型)으로 축약(縮約)할 수 있는데 이렇게 축약(縮約)된 내용(內容)은 다음과 같다. ⇒ [ 축약(縮約)된 유형(類型) 첫 번(番)째 ]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를 한자(漢字)의 뜻 곧이곧대로 ‘장애(障碍)는 친구다.’로 직역(直譯)한 후(後), ‘왜! 왜!······ 왜! 장애(障碍)가 친구(親舊)냐?’라는 식(式)의 다소 황당(多少 荒唐)한 논리(論理)를 전개(展開)하면서 싫어하는 경우(境遇). ⇒ [ 축약(縮約)된 유형(類型) 두 번(番)째 ]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장애(障碍)’에 대한 판단기준(判斷基準)은 단순(單純)한 의학적 분류(醫學的 分類)로서만 이에 따른 유/무(有/無)를 판단(判斷)하여 규정(規程)하고 있기에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비주체적(非主體的), 비사회적(非社會的)으로 형상화(形象化), 구조화(構造化)하는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보다는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주체적(主體的), 사회적(社會的)으로 칭(稱)할 수 있는 ‘장애인(障碍人)’이란 용어(用語)가 더욱더 적합(適合)하다고 주장(主張)하는 경우(境遇). 「 ※ 참고(參考) 속(屬) 참고(參考) : ‘⇒ [ 축약(縮約)된 유형(類型) 첫 번(番)째 ]와 ⇒ [ 축약(縮約)된 유형(類型) 두 번(番)째 ]’에 대한 어디까지나 주관적(主觀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나만의 짧디 짧은 소견(所見). 먼저 ‘ ⇒ [ 축약(縮約)된 유형(類型) 첫 번(番)째 ] ’에 대한 어디까지나 주관적(主觀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나만의 짧디 짧은 소견(所見). ‘ ⇒ [ 축약(縮約)된 유형(類型) 첫 번(番)째 ] ’과 같은 경우(境遇)는 내가 볼 때, 그다지 별다른 크나큰 설득력(說得力)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보이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다소(多少) 적합(適合)하지 않은 ‘장애우(障碍友)’이라는 용어(用語)를 한자(漢字)의 뜻 곧이곧대로 ‘장애(障碍)는 친구다.’로 직역(直譯)한 후(後), ‘왜! 왜!…… 왜! 장애(障碍)가 친구(親舊)냐?’라는 식(式)의 다소 어폐(多少 語弊)가 있는 황당(荒唐)한 논리(論理)를 전개(展開)하면서 무조건적(無條件的)으로 싫다고 한다면 현재(現在)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에 대한 ‘법정용어(法定用語)’로 규정(規程)하고 있는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도 ‘장애(障碍)는 사람이다.’로 해석(解析)될 여지(餘地)를 남겨 이에 따른 이견(異見)이 파생(派生)될 소지(素地)를 본의(本意) 아니게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제공(提供)하게 됨으로써 이에 따른 또 다른 문제점(問題點)을 야기(惹起)한다는 것이 ‘ ⇒ [ 축약(縮約)된 유형(類型) 첫 번(番)째 ] ’에 대한 어디까지나 주관적(主觀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나만의 짧디 짧은 소견(所見)이다. 다음 ‘ ⇒ [ 축약(縮約)된 유형(類型) 두 번(番)째 ] ’에 대한 어디까지나 주관적(主觀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나만의 짧디 짧은 소견(所見). 앞에서 게시(揭示)한 ‘ ⇒ [ 축약(縮約)된 유형(類型) 첫 번(番)째 ] ’보다는 ‘ ⇒ [ 축약(縮約)된 유형(類型) 두 번(番)째 ] ’에 무게를 실어 주고 싶은데 그 이유(理由)인 즉(卽), ‘ ⇒ [ 축약(縮約)된 유형(類型) 두 번(番)째 ] ’에서 서술(敍述)한 내용(內容)도 당연(當然)히 포함(包含)되며 또한,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정부(政府)에서도 ‘법정용어(法定用語)’를 ‘장애인(障碍人)’으로 규정(規定)하고 있는 소이(所以)도 물론(勿論), 당연(當然)히 있는 것이다. 또한, 요즘 시대상(時代相)을 반영(反映)하면 타인(他人)이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장애우(障碍友)’란 용어(用語)는 크나큰 무리가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는 예로부터 계승(繼承)되고 있는 우리의 고유(固有)한 정서상(情緖上),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自己 自身)을 스스로 ‘장애우(障碍友)’라고 칭(稱)한다면, 마치 자기 자신(自己 自身)을 손수 높이는 것과 같은 인상(人相)을 타인(他人)에게 심어주게 되는 원유(原由)를 본의(本意) 아니게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제공(提供)함으로써 타인(他人)으로부터 적지않은 거부감(拒否感)을 유발(誘發)시키게 된다는 것이 이에 대한 어디까지나 주관적(主觀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나만의 짧디 짧은 소견(所見)이다. [ ※ 참고(參考) 속(屬) 참고(參考) 속(屬) 참고(參考) :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극소수 정부기관(極少數 政府機關)과 극소수 정부투자기관(極少數 政府投資機關)의 홈페이지(Homepage)에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다소(多少) 적합(適合)하지 못한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라는 용어(用語)로 표기(表記)하던 곳이 있어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로 정정(訂正)해 달라는 이의(異議)를 인터넷(Internrt)이라는 ‘문명(文明)의 이기(利器)’를 이용(利用) 아니 활용(活用)해서 제기(提起)하였더니 어디까지나 이와 같은 주관적(主觀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나만의 짧디 짧은 소견(所見)을 수렴(收斂)하여 정정(訂正)하거나, 가까운 시일(時日)에 정정(訂正)하겠다는 회신(回信)을 전(傳)해왔다. 이 가운데 한 정부투자기관(政府投資機關)에서는 다음과 같은 회신(回信)을 전(傳)해왔는데 그 내용(內容)을 다음과 같다. ‘한국지체인협회(韓國肢體人協會),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障碍友權益問題硏究所)’에 문의(問議)한 결과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는 ‘장애인(障碍人)을 친구(親舊)처럼 생각한다.’라는 ‘신조어(新造語)’이지만 ‘장애인(障碍人)’들이 느끼는 어감(語感)은 “~야”라는 격(隔)이 없는 표현(表現)으로 생각하여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에 대한 반감(反感)이 있으며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령상(法令上)으로도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로 통용(通用)하고 있으므로 우리 기관(機關)은 홈페이지(Homepage)에서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를 ‘장애인(障碍人)’으로 변경(變更)하도록 하겠습니다. 중략(中略)······. 이 회신(回信)을 계기(契機)로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1987년(年) 12월(月) 02일(日)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障碍友權益問題硏究所)’가 설립(設立)되면서 이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를 항간(巷間)에서 사용(使用)하기 시작(始作)된 것으로 전(傳)해지고 있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障碍友權益問題硏究所)’에서조차도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에 대해서 어디까지나 주관적(主觀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나만의 짧디 짧은 소견(所見)과 동일(同一) 아니 유사(類似)하다는 것을 확인(確認)할 수 있었다. ] [ ※ 다른 참고(參考) 속(屬) 참고(參考) 속(屬) 참고(參考) :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현재(現在)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정용어(法定用語)’인 ‘장애인(障碍人)’을 다른 용어(用語)로 대체(代替)하자는 의견(意見)도 항간(巷間)에 있는데 이 ‘장애인(障碍人)’에 대한 대체용어(代替用語)로 항간(巷間)에서 거론(擧論)되고 있는 용어(用語)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애우(障碍友), 재활인(再活人), 복지인(福祉人), 도움인······ 등’ 하지만, 이에 따른 이견(異見) 또한 적지 않아 더욱더 많은 이의 공론(公論)을 도출(導出)하는데 있어서는 아직 많이 미흡(未洽)한 것이 현실정(現實情)이다. 따라서, 현재(現在)로서는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고유정서(固有情緖)와 사회여건(社會與件) 등을 고려(考慮)한다면 앞에서 거론(擧論)된 ‘장애우(障碍友), 재활인(再活人), 복지인(福祉人), 도움인······ 등’보다는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용어(用語)로는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한 뜻으로 변모(變貌)하고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정용어(法定用語)’인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가 더욱더 적합(適合)하다는 결론(結論)이 이에 따른 어디까지나 주관적(主觀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나만의 짧디 짧은 소견(所見)인 동시(同時)에 주장(主張)인 것이다. 더군다나,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에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한 뜻으로 변모(變貌)한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로 바뀐 것도 ‘장애관련단체(障碍關連團體)’와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한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정용어(法定用語)’인 ‘장애인(障碍人)’들의 수많은 청원(請援)으로 이와 관련(關聯)된 법(法)이 개정(改正)되었기 때문에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많이 그리고 널리 사용(使用)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정용어(法定用語)’인 ‘장애인(障碍人)’은 당사자(當事者)와 ‘장애관련 단체(障碍關連 團體)’에 있어서는 매우, 매우······ 매우 소중(所重)하며 또한, 매우, 매우······ 매우 중요(重要)한 용어(用語)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이런저런 까닭으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1인칭 시점(一人稱 視點)이나, 2인칭 시점(二人稱 視點)이나, 3인칭 시점(三人稱 視點) 그 어떤 시점(視點)에서도 칭(稱)할 때, 별다른 특별(特別)한 무리가 없고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법정용어(法定用語)’로 규정(規程)하고 있는 ‘장애인(障碍人)’이란 용어(用語)가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하다는 것이 이에 따른 어디까지나 주관적(主觀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나만의 짧디 짧은 소견(所見)인 동시(同時)에 주장(主張)인 것이다. 」』 ∴(그러므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용어(用語)로는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그것도 너무, 너무······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ㅂㅕㅇㅅㅣㄴ(病身)’이라는 용어(用語)나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불구자(不具者)’라는 용어(用語)나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나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다소(多少) 적합(適合)하지 못한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보다는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한 뜻으로 변모(變貌)하고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법정용어(法定用語)’로 규정(規程)하고 있는 ‘장애인(障碍人)’이란 용어(用語)에 가장, 가장······ 가장 많은 타당성(妥當性)과 당위성(當爲性)과 합당성(合當性) ······ 등을 부여(附與)할 수 있는 것이다. ☞☞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에 대해서······.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법정용어(法定用語)’로 규정(規程)하고 있는 ‘장애인(障碍人)’이란 용어(用語)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많이 사용(使用)하고 있는 적합(適合)하지 못한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용어(用語)들을 살펴보면 크게 ‘정상인(正常人), 일반인(一般人), 일반(一般)’이라는 용어(用語)로 집약(集約)할 수 있는데 이렇게 집약(集約)된 용어(用語)들은 분명(分明)히 잘못된 것인데 그 까닭은 다음에 설명(說明)하는 내용(內容)과 같다. 먼저 역(逆)으로 ‘정상인(正常人), 일반인(一般人), 일반(一般)’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상인(正常人) ⇔ 비정상인(非正常人)’ ‘일반인(一般人) ⇔ 특정인(特定人)’ ‘일반(一般) ⇔ 특별(特別)’ 다음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많이 사용(使用)되는 ‘정상인(正常人)이나 일반인(一般人)이나 일반(一般)’이 왜!, 왜!······ 왜! 적합(適合)하지 못한지 아니 부적합(不適合)한지 그 이유(理由)는 다음에 설명(說明)하는 내용(內容)과 같다. ⇒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사용(使用)되고 있는 ‘정상인(正常人)’ 첫째 – 앞에서도 짧게나마 피력(披瀝)했지만, 역(逆)으로 ‘정상인(正常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는 ‘장애인(障碍人)이 아니라 비정상인(非正常人)’이다. 둘째 – 이 두 용어(用語) 즉(卽), ‘장애인(障碍人)과 정상인(正常人)’을 분류(分類)한 기준(基準)은 엄밀(嚴密)하면서도 엄격(嚴格)히 전혀 다른데도 불구(不拘)하고, 마치 분류(分類)한 기준(基準)이 같은 것으로 간주(看做)해서 상호 간(相互 間)에 서로 비교(比較)한다는 사실(事實), 바로 이 자체(自體)부터가 크나큰 어폐(語弊) 또는, 크나큰 모순(矛盾)이 있는 것이다. 셋째 – ‘정상인(正常人)과 비정상인(非正常人)’의 차이(差異)는 단지(但只) ‘관점(觀點)을 어디에 두고 논(論)하느냐!’에 따라 ‘정상인(正常人)과 비정상인(非正常人)’으로 분류(分類)되는 것뿐이다. 즉(卽), ‘정상인(非正常人)’의 관점(觀點)에서 논(論)하면 ‘정상인(正常人)’은 ‘정상인(非正常人)’이고 ‘비정상인(非正常人)’은 ‘비정상인(非正常人)’은 ‘비정상인(非正常人)’이겠지만, 이와 같은 논리적 이치(論理的 理致)로 ‘비정상인(非正常人)’의 관점(觀點)에서 논(論)하면 ‘비정상인(非正常人)’은 ‘정상인(正常人)’이 되고 오히려 ‘정상인(正常人)’은 ‘비정상인(非正常人)’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例)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 예(例) : ‘눈이 둘인 사람 즉(卽),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상(現 世上)에서는 ‘눈이 둘인 사람 즉(卽), 우리’를 ‘정상인(正常人)’으로 간주(看做)하며 또한, ‘눈이 둘인 사람 즉(卽), 우리’를 ‘정상인(正常人)’으로 흔히 칭(稱)하고 있는데 만약(萬若), 여기에 ‘눈이 셋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假定)하면, ‘눈이 둘인 사람 즉(卽), 우리’는 ‘눈이 셋인 사람’을 흔히 ‘비정상인(非正常人)’으로 간주(看做)하며 또한, 흔히 ‘비정상인(非正常人)’이라고 칭(稱)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이와 동일(同一)한 논리적 이치(論理的 理致)로 ‘눈이 셋인 사람’들만으로 구성(構成)된 세상(世上)이 어딘가에 존재(存在)하고 있다는 가정 하(假定 下)에 ‘눈이 둘인 사람 즉(卽), 우리’가 그 세상(世上)을 찾아간다면 ‘눈이 셋인 사람’들은 ‘눈이 둘인 사람 즉(卽),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또한, 어떻게 칭(稱)하겠는가를 차분(差分)히 생각해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눈이 셋인 사람’들만으로 구성(構成)된 세상(世上)에서는 ‘눈이 셋인 사람’들이 지극(至極)히 정상인(正常人)’으로 간주(看做)할 것이며, 오히려 ‘눈이 둘인 사람 즉(卽), 우리’를 ‘비정상인(非正常人)’으로 간주(看做)하며 또한, ‘비정상인(非正常人)’이라고 ‘눈이 셋인 사람’들이 칭(稱)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더군다나, 이른바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임을 자부(自負)고 있는 인간(人間)을 어느 특정신체(特定身體)의 일부분(一部分)도 아닌 인간 자체(人間 自體)를 ‘정상인(正常人)’과 ‘비정상인(非正常人)’으로 분류(分類)해서 비교(比較)한다는 이 사실(事實), 이 자체(自體)부터가 분명(分明)히 크나큰 어폐(語弊) 또는, 크나큰 모순(矛盾)이 있는 잘못된 사항(事項)이다. ] 따라서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정상인(正常人)’을 상호 간(相互 間)에 서로 비교(比較)할 수 있는 대상(對象)이 아닌데도 불구(不拘)하고 비교(比較)하면서 사용(使用)하는 것은 엄밀(嚴密)하면서도 엄격(嚴格)히 크나크게 잘못된 사항(事項)인 것이다. ⇒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사용(使用)되고 있는 ‘일반인(一般人)’ 첫째 – 역(逆)으로 ‘일반인(一般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는 ‘장애인(障碍人)’이 아니라 ‘특정인(特定人)’이다. 둘째 – 이 두 용어(用語) 즉(卽), ‘장애인(障碍人)과 일반인(一般人)’도 분류기준(分類基準)은 엄밀(嚴密) 하면서도 엄격(嚴格)히 전혀 다른데도 불구(不拘)하고, 마치 같은 기준(基準)으로 분류(分類)된 것으로 간주(看做)하고 상호 간(相互 間)에 서로 비교(比較)하는 이 사실(事實) 이 자체(自體)부터가 크나큰 어폐(語弊) 또는, 크나큰 모순(矛盾)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일반인(一般人)과 특정인(特定人)’을 분류(分類)한 기준(基準)은 사회적 신분(社會的 身分)이나 사회적 지위(社會的 地位)에 따른 분류(分類)지 ‘장애 유/무(障碍 有/無)’에 따른 분류(分類)가 절대(絶對), 절대(絶對)······ 절대(絶對)로 아니다. 셋째 – 각종대중매체(各種大衆媒體)에서 흔히 ‘정치인(政治人) 연예인(演藝人), 운동선수(運動選手)······ 등’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일반인(一般人)’을 많이 사용(使用)하고 있는 것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쉬이 접(接)할 수 있다. 혹(或), 이 글을 대하는 사람 가운데 이와 동일(同一) 아니 유사(類似)한 논리적 이치(論理的 理致)로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일반인(一般人)’이라는 용어(用語)를 사용(使用)하는 것이 ‘무슨 문제(問題)냐?’라고 반문(反問)도 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그렇다. 별(別)다른 특별(特別)한 문제(問題)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반문(反問)하는 사람은 크나크게 간과(看過)한 사실(事實)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다음과 같다. ‘정치인(政治人), 연예인(演藝人). 운동선수(運動選手)’······ 등은 ‘일반인(一般人)’이라는 불변(不變)의 전제 하(前提 下)에 이 ‘정치인(政治人), 연예인(演藝人). 운동선수(運動選手)······ 등’은 ‘특정인(特定人)’으로 간주(看做)하고 이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일반인(一般人)’을 사용(使用)하고 있는 점을 크나크게 간과(看過)한 것이다. 더군다나, 사람들 대부분(大部分)은 이와 같은 각종대중매체(各種大衆媒體)를 대하면서 이 ‘정치인(政治人), 연예인(演藝人). 운동선수(運動選手)······ 등’이 ‘일반인(一般人)’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적 이치(論理的 理致)로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각종대중매체(各種大衆媒體)에서 ‘일반인(一般人)’이라는 용어(用語)를 사용(使用)해도 이 ‘정치인(政治人), 연예인(演藝人). 운동선수(運動選手)······ 등’처럼 ‘장애인(障碍人)도 일반인(一般人)’이라는 불변(不變)의 절대적(絶對的)인 전제 하(前提 下)에 사용(使用)한다면 아무런 별(別)다른 특별(特別)한 문제(問題)는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차디찬 현실정(現實情)은 이렇지 않고 ‘장애인(障碍人)과 일반인(一般人)’을 비교(比較)한다면 대부분(大部分) 사람들이 ‘장애인(障碍人)’은 ‘일반인(一般人)’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同時)에 ‘장애인(障碍人)’은 ‘일반인(一般人)’이 아니라고 간주(看做)하며 또한, 이렇게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일반인(一般人)’을 사용(使用)한다는 맹점(盲點)이 문제(特別)라면 문제(特別)인 것이다. 그것도 너무, 너무······ 너무나도 크나큰 문제(特別)인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일반인(一般人)’이라는 용어(用語)를 상호 간(相互 間)에 서로 비교(比較)하면서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정용어(法定用語)’인 ‘장애인(障碍人)’을 사용(使用)하는 것은 엄밀(嚴密)하면서도 엄격(嚴格)히 크나크게 잘못된 사항(事項)인 것이다. ⇒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사용(使用)되고 있는 ‘일반(一般)’ 첫째 – 앞에서도 짧게나마 언급(言及)하였지만, 역(易)으로 ‘일반(一般)’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는 ‘특별(特別)’이다. 둘째 –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사용(使用)하고 있는 ‘일반(一般)’은 상호 간(相互 間)에 분류기준(分類基準)이 전혀 다른데도 불구(不拘)하고, 마치 분류기준(分類基準)이 같은 것으로 간주(看做)해 상호 간(相互 間)에 서로 비교(比較)한다는 이 사실(事實) 이 자체(自體)부터가 크나큰 어폐(語弊) 또는, 크나큰 모순(矛盾)이 있는 것이다. 셋째 – 두 용어(用語) 즉(卽), ‘장애인(障碍人)과 일반(一般)’은 상호 간(相互 間)에 서로 비교(比較) 또는, 비량(比量)할 수 없는 ‘종속관계(從屬關係)’도 아니고 ‘대립관계(對立關係)’는 물론(勿論) 더욱, 더욱…… 더욱더 아니다. 따라서 ‘장애인(障碍人)’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일반(一般)’이라는 용어(用語)를 상호 간(相互 間)에 서로 비교(比較)하면서 사용(使用)하는 것은 엄격(嚴格)하면서도 엄밀(嚴密)히 크나크게 잘못된 사항(事項)인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정용어(法定用語)’인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에 ‘맞서는 용어(用語) 즉(卽), 반대용어(反對用語)’로 ‘정상인(正常人)이나 일반인(一般人)이나 일반(一般)’은 적합(適合)하지 못한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용어(用語)로서 엄격(嚴格)하면서도 엄밀(嚴密)히 크나크게 잘못된 사항(事項)인 것이다. ☞☞☞ 《 ‘정리(整理)하는 글’ 》 ☜☜☜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너무, 너무……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ㅂㅕㅇㅅㅣㄴ(病身)’이라는 용어(用語)나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너무나도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불구자(不具者)’라는 용어(用語)나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나쁜 뜻으로 변모(變貌)한 ‘장애자(障碍者)’라는 용어(用語)나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비주체적(非主體的)이며 비사회적(非社會的)으로 구조화(構造化), 형상화(形象化)하는 다소 적합(適合)하지 못한 아니 부적합(不適合)한 ‘장애우(障碍友)’라는 용어(用語)나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새로이 거론(擧論)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이견(異見)도 적지 않아 더욱더 많은 이의 공론(公論)을 도출(導出)하는데 있어서는 아직은 많이 미흡(未洽)한 용어(用語)인 ‘재활인(再活人), 복지인(福祉人), 도움인······ 등’보다는 ‘장애(障碍)가 있는 사람’을 칭(稱)하는 데 있어서 현시점(現時點)을 기준(基準)으로 시간(時間)이라는 역사 속(歷史 屬)에서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한 뜻으로 변모(變貌)했으며 현재(現在)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고유정서(固有情緖)와 사회여건(社會與件) 또는, 사회 소여(社會 所與)······ 등을 충분(充分)히 고려(考慮) 또는, 고사(考思)한 ‘자유민주주의법치국가(自由民主主義法治國家)인 우리나라 즉(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법정용어(法定用語)’인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가 가장, 가장…… 가장 적합(適合)하므로, 이 ‘장애인(障碍人)’이라는 용어(用語)에 더욱더 많은 타당성(妥當性)과 당위성(當爲性)과 합당성(合當性)을 부여(附與)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장애인(障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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