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12억이 넘는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정율성 선생은
분명 한국인이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서는
우리 전통 가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혁명의 운동가였지만
우리 가락을 잊지 못했던
그의 음악 세계를 이재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END▶
◀VCR▶
음악의 원천을 생활 속에서 찾았던 정율성.
항일 투쟁 기간동안
농촌과 공장, 그리고 군대로
중국 곳곳을 누비며
장기간 생활 체험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가 생활 속에서 느꼈던 희노애락은
모두 오선지에 그려져
살아있는 음악이 됐습니다.
◀INT▶
그의 작품은 시대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정율성은 중국민의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민에게 그의 음악은 예술이전에
혁명의 무기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INT▶
모택동이 총칼로 통일했다면, 그는 음악으로
통일에 앞장섰다.
일제하에서 활동 무대는 비록 중국이였지만
그는 한국인의 피를 가진 한국사람이였습니다.
때문에 그의 음악 곳곳에서는
우리 전통 가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제 봉쇄에 맞서
자급 자족하자는 생산 운동을 담았다는 생산요.
이펙트.....
가사를 한국어로 바꿔 불러보면
전형적인 우리의 민요처럼 느껴집니다.
바로 굿거리 장단이기 때문입니다.
이펙트......
사랑하는 님을 항일군에 보내는 여인의
마음을 담은 연수요.
이펙트....
많은 청춘 남녀의 심금을 울렸던
연수요에서는
아리랑 박자의 숙연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INT▶
노동은..정율성은 중국의 음악에 한국의 가락을
혼용해 중국 음악의 폭을 넓혀갔다.
이처럼 그의 음악에서
우리의 전통 가락을 잊지 않았던 정율성.
광주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정율성의
성장과 음악 세계를 담은 특집 다큐맨터리가
내일 저녁 7시 20분에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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