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금남로 (R) - 수퍼

광주MBC뉴스 기자 입력 2005-11-30 12:00:00 수정 2005-11-30 12:00:00 조회수 3

◀ANC▶

이번주부터

우리 동네나 마을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사라져가는 문화 원형을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항쟁의 역사가 서려있는

광주의 대표 거리

금남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재원 기잡니다.

◀END▶

◀VCR▶



가까이에는 5.18과 4.19,

멀게는 광주 학생 독립 운동과 동학 혁명까지.



역사의 변환점에는

언제나 금남로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금남군 정충신 장군의 군호를 딴 금남로.



1896년 전남도청이

나주에서 광주로 이전하는 것을 기점으로

도청 주변에는

광주 객사와 하모당 등이 없어지고

거리의 골격이 갖춰집니다.

◀INT▶



당시만 하더라도 폭 8미터에 불과했던

금남로 곳곳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자리를 잡아 서정적인 운치가 넘쳐났습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를 맞아 명치전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사용됐고,

구 전남 도청 주변은 일본식 건물이 차지합니다.



민주의 종이 들어선 곳에 있었던

대황사라는 사찰에는

무술을 가르쳤던 무덕전이, 구 전남 도의회에는

상품 진열관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INT▶



해방후에 일제의 잔재를 털어내며

현재의 명칭을 갖게된 금남로는

개발 붐이 불어닥친 1967년,

한 차례 큰 변화를 겪게됩니다.



도청 앞에서 유동까지 왕복 6차선으로

확장되면서 무덕전과 경찰서등

도청앞에 위치했던 대부분의 건물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INT▶



역사적 변환기마다 남도인들이 항쟁의 장소로

이용했던 금남로.



구 전남 도의회 앞에는

수백년 금남로의 역사를 함께 해온 혜화나무가

아직도 의연히 버티고 있습니다.



MBC뉴스//////////

광주 mbc뉴스 daum에서 확인하세요

Copyright © Gwangj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