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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부터
우리 동네나 마을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사라져가는 문화 원형을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항쟁의 역사가 서려있는
광주의 대표 거리
금남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재원 기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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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는 5.18과 4.19,
멀게는 광주 학생 독립 운동과 동학 혁명까지.
역사의 변환점에는
언제나 금남로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금남군 정충신 장군의 군호를 딴 금남로.
1896년 전남도청이
나주에서 광주로 이전하는 것을 기점으로
도청 주변에는
광주 객사와 하모당 등이 없어지고
거리의 골격이 갖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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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하더라도 폭 8미터에 불과했던
금남로 곳곳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자리를 잡아 서정적인 운치가 넘쳐났습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를 맞아 명치전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사용됐고,
구 전남 도청 주변은 일본식 건물이 차지합니다.
민주의 종이 들어선 곳에 있었던
대황사라는 사찰에는
무술을 가르쳤던 무덕전이, 구 전남 도의회에는
상품 진열관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INT▶
해방후에 일제의 잔재를 털어내며
현재의 명칭을 갖게된 금남로는
개발 붐이 불어닥친 1967년,
한 차례 큰 변화를 겪게됩니다.
도청 앞에서 유동까지 왕복 6차선으로
확장되면서 무덕전과 경찰서등
도청앞에 위치했던 대부분의 건물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INT▶
역사적 변환기마다 남도인들이 항쟁의 장소로
이용했던 금남로.
구 전남 도의회 앞에는
수백년 금남로의 역사를 함께 해온 혜화나무가
아직도 의연히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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