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주말에 뭘할까.
이번 주에는 유서깊은 유림의 고장,
장성으로 떠나보겠습니다.
◀END▶
노령산맥이 긴 성과 같이
북서쪽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의 장성.
호남 지방에서 유림의 고장을 꼽을 때면
흔히 광나장창 이라고 하듯
장성은 광주 나주 창평과 더불어
선비가 많고 학문이 성한 곳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황룡면 필암리에 자리 잡은
필암서원은 호남지방의 유종으로 추앙받는
하서 김인후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장성 사람들의 꼿꼿한 기질과
은근한 자존심의 바탕이 되어 온 곳입니다.
높게 세워진 홍살문을 지나
서원 안으로 들어가자면
정문 역할을 하는 확연루가 보입니다.
당당하고 힘센 2층 누각집이 기품있어 보이는데 보통 유생들의 휴식공간으로 쓰였던 곳으로
이 곳에 걸린 현판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쓴 것입니다.
확연루를 시원스레 통과하면
강당 건물인 청절당과 사당인 우동사,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서재, 재실 등이 있습니다.
필암서원에서는 이 지역 학생들을 위한
한문강좌 등이 마련되어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장성에는 또 한명의 유명한 선비가 있는데
청백리의 대명사로 알려진 박수량입니다.
황룡면 아곡리에는 박수량의 묘가 있고,
그곳에 글자 하나 새겨지지 않은
백비라는 하얀 빗돌 비석이 서 있습니다.
박수량은 중종때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쳤지만
세상을 떠났을 때
집안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할 정도로
곤궁한 형편이었습니다.
명종이 나라에서 장례를 치르게 해주고
일생의 청백한 행적을
글로 남기는 것 자체가 누가 될 수도 있으니
글을 쓰지 않은 백비를 세우도록 했다고 합니다
황룡은
동학농민운동의 최대 격전지이기도 합니다.
당시 전봉준의 동학 농민군은
고창, 영광, 함평현을 차례로 점령한 후,
전주를 점령하기 위하여
이 곳에서 경군과 일대접전을 벌였습니다.
결국 동학 농민군이 서울의 정예부대를 격파한 의미 있는 전투로서,
동학농민군에게는 사기와 자신감을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현재 이 곳에는
동학혁명 승전 기념공원이 조성돼 있습니다.
Copyright © Gwangj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