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미 시카고대의 부르스 커밍스 교수는
안보를 우선시한 미국의 그릇된
정책 판단 때문에
80년 광주의 참극이 방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용필 기자입니다
(기자)
부르스 커밍스 교수는 80년 5월
미국 정부가 전두환 군부의 광주 학살을
지원한 꼴이 됏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주한미대사 등이
광주에서 군인을 철수하지 않으면
원조와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압력을 넣었다면
군부가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예로 지난 1975년 키신저 국무장관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그만 두게한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인터뷰)
전보를 보내서 계속해서 핵무기를 개발하면
미군과 미국의 지원을 철회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박대통령이 핵무기 개발을 그만뒀고
이를 보고 미국이 한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카터 행정부의 관료와 보좌관들은
북의 침공에 대비한 안보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전두환 군부를 벌주기보다는 지지하는 쪽으로
조언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특히 80년 5월 20일 브레진스키 안보담당
보좌관은 단기적으로 전두환정권을
지지해야한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도와달라는 광주의 요청에
미국은 침묵했고
20사단의 휴전선 근무 이탈을 방치해
광주가 유혈 진압됐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87년 6.10 항쟁 당시 미국의 입장은
아주 달랐습니다
독재 타도 투쟁이 정점에 달했던 그때
친위 쿠테타까지 기도했던 전두환 정권에게
미국은 강력한 경고 메세지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레이건 행정부에서 노태우씨에게
정권을 물러주지 말고 직선을 하라고
전두환 정권에 사절단을 보냈을 것이다
광주 항쟁이후로 억압도 심해졌지만
저항도 거세서 87년 6월에 전두환 정권이
손을 든 것이다
이는 6.29 선언이
당시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뜻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미국의 강한 압력에 굴복했음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80년 5월과 87년 6월 항쟁
군부 정권에 대한 미국의 서로 다른 입장이
광주의 비극과 민중의 승리라는
아주 다른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부르스 커밍스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광주 학살 이후
제 3세계의 독재 정권을 지원하는
미국의 또다른 모습을 인식하게 됐다며
5.18이 한국에서 반미운동의 시발점임을
시사했습니다
MBC 뉴스
Copyright © Gwangj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