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곳에서 죽을 수 밖에 없다'
5.18 당시 한 시민군은
자신의 희생을 이렇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28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슴속에 묻어놓고 하지 못했던 당시 이야기들,
일부 시민들은 오늘
광주MBC라디오에 출연해 그 응어리를풀었습니다
한신구 기자의 보도
< 기자 >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도청을 지키던 1980년 5월 26일,
당시 신문기자 박희서씨는
계엄군의 도청 진압작전에 대한 정보를 듣고
10번을 단 시민군 대변인을 만났습니다.
헛된 죽음을 맞지 말고 떠나라는 자신의 말에
'10번 대변인'은 결의에 찬 한마디를 남깁니다.
< 인터뷰 : 박희서 당시 **일보 기자>
'피를 통해서만, 우리가 죽어야 진실 알려진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도청 진압작전이 끝난 뒤
이 대변인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는데,
바로 그 사람이 윤상원 열사였다고,
박씨는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5.18의 진실과 아픔을 알면서도
서슬퍼런 신군부의 검열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자신에 대한 회한의 응어리도 쏟아냈습니다.
< 인터뷰 : 박희서 당시 **일보 기자 >
'나를 포함해 우리들은 비겁자, 방관자다'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80년 항쟁 당시, 경찰 부탁으로
시민군과 대학생을 회유하고, 경찰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역할을 했다는 회고도 나왔습니다.
< 인터뷰 : 김 ** >
'시민군 활동 등을 알리고 회동 주선했다'
당시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아직도 고통속에 살고 있다는 계엄군의 회고,
학생들에게 정부미를 제공해 고문까지 받았다는
당시 공무원의 증언까지 ....
28년이 지난 지금도 5.18은 ...
그리고 당시의 숭고하고 아픈 희생의 기억은
우리 기억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엠비시 뉴스 한신구 ◀ANC▶◀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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