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페셜 5・18 뉴스

이름도 남김없이 2부 예고

김철원 기자 입력 2020-05-27 20:20:00 수정 2020-05-27 20:20:00 조회수 5

(앵커)
40년 전 오늘은
광주를 최후까지 지키던 시민군들이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진압된 날입니다.

전두환 세력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끝까지 감추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밤 방송되는
5.18 4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2부의
주인공들입니다.

김철원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1981년 1월 전두환이 미국을 찾습니다.

금남로의 핏자국이 아직 마르지 않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정식 권력자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녹취)전두환
“본인은 이번 방문을 통하여 새로 취임한 레이건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를 대표하고 국민을 대신하여 축하의 인사를 전하는 한편...”

광주는 신음하고 있었고
국내에서는 모두가
찬양하기에 바빴지만
재미교포들은 전두환의 미국방문에
분노했습니다.

(인터뷰)고의곤(78세 재미교포)
"데모하는 워싱턴 교포들이 앞을 막고 있어가지고 전두환이 부인이랑 둘이서 백악관에 들어가는데 뒤로 이제 들어가는데 여기 교포 한 분이 손가락질하면서 “ 너(이순자) 어디라고 여기 워싱턴에 오느냐” 그러니까 이순자 여사가 (자기를) 총으로 쏘는 줄 알고 뒤로 완전히 나가자빠졌어요.”

일본과 독일에서도 교포들이
광주시민들을 위한 성금 모금 활동은 물론
거리 시위를 통해 광주의 비극을
알려나갔습니다.

(인터뷰)최영숙 한민족유럽연대의장 (파독 간호사 출신)
"(군인이 전화를 해서) 돈 벌어서 한국에 보내지 왜 너도 경상도 사투리 쓰는데 왜 광주 것들 도와주려고 난리를 치느냐. 막 그렇게 협박전화를 하더라고요.”

미국에서 광주를 알려나가는 운동의 중심에
5.18의 마지막 수배자 故 윤한봉 선생이
있었습니다.

윤상원과 박관현 등 죽어간 동지들을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활동했지만
한평생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김수곤 (88세) 미국 뉴욕 민권센터 전 이사장
“윤한봉 선생이 얘기하는 광주는 딴 것보다 자기 죄책감. 나는 그게 제일 생각나요. ‘자기가 죽지 않고 살아왔다고요. 그 참담해하는 것을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어요.”

2011년 5.18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쾌거의 이면에는 5.18 전도사 故 서유진 선생의 노력이 절대적이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나간채 (전남대 명예교수)
“이승에 머무는 동안 사랑도, 명예도, 일체의 부귀영화도 멀리한 채 이 세상을 주유해 온 삶. 탁한 세상의 온갖 유혹과 향락도 뿌리치고 맨 홀몸으로 외롭게 걸어온 삶을 우리는 마음에 새깁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처럼
사랑과 명예는 물론 자신의 이름도
남기지 않고 광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의 이야기가 오늘 밤 10시에 방송됩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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