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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9일 “잘 살기 위해 죽음을 배워야 한다” <허승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우리는 대부분 잘 사는 법만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해질 수 있을까? 그런데 정작 묻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도대체 죽음이 뭔지 알면서 살고 있는가?”
죽음은 늘 불길한 단어로 취급됩니다. 말하면 재수가 없고, 생각하면 우울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죽음을 밀어내고, 숨기고, 외면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외면할수록 우리의 삶의 모습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얕아집니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잘 살려면 죽음을 끊임없이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삶 역시 진지하게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안다는 것은 내 삶에 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한이 있는 삶은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게 만들고, 지금의 삶을 소중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중요한 사실을 대부분 너무 늦게 배웁니다. 마치 자신에게는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다 큰 상실의 아픔을 겪거나 누군가의 죽음을 직면한 뒤에야 깨닫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반드시 다가오는 죽음,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죽음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학교는 지금까지 성공하는 삶만을 가르칩니다. 성적을 올리는 법, 경쟁에서 이기는 법, 남들보다 더 잘사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학교는 거의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떻게 실패와 상실을 극복해야 하는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유일한 존재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죽음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절망을 주는 일이 아닙니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질문을 함께 나눔으로써 불안을 극복할 수 있게 합니다. 죽음에 대한 말을 금기시할 때 아이들은 그 상실과 고통을 자기 안에 가둬버립니다. 그 고립이 더 큰 불안을 만듭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죽음과 상실을 적절한 언어로 배운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조절하고, 삶의 의미를 더 분명히 인식하며,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죽음을 배우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됩니다. “내 삶과 내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 “나는 왜 공부하는가?” “나는 어떤 어른으로 살고 싶은가?” 이 질문은 성적과 입시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인생 전체를 지탱하는 기반이 됩니다.
학교에서 죽음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경쟁에서 지는 법도 배웁니다. 영원히 이길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일은 가치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타인의 삶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공부의 양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설명해 줄 언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는 아이들에게 지식과 기능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삶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자기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잘 산다는 것은 완벽하게 사는 것도 성공적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후회없이 사는 것, 적어도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죽음을 아는 사람은 조금 더 천천히 분노하고, 조금 더 쉽게 용서하며, 조금 더 깊이 사랑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활기차고 깨어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잘 살고 싶다면 죽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서로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를 원한다면, 학교에서부터 죽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며, 특히 청소년 사망의 주요 원인이 자살입니다. 청소년들은 학업스트레스, 경쟁, 가족·정서 문제, 사회적 압박 등 높은 정신적 부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한 죽음에 대한 교육은 역설적으로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죽음을 말하지 않는 학교나 사회보다, 죽음을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학교와 사회가 아이들에게 더 안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