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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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9일 “사람사는 세상” <정희남 대담미술관장>

 2026년 병오년이 되니 유난히 부모님의 빈자리가 그립습니다. 지나가는 바람 소리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듯하고, 황량한 가로수 사이로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렴풋이 배어 나옵니다.

 

 어느 해 여름이었습니다. 온몸이 땀에 젖어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린 채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호미를 들고 집에 들어오시던 어머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파트 공터에 늘 그랬듯이 호박을 심고 풀을 메고 오신 게 분명했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따 먹어본 적 없는 호박이었고, 날씨는 유난히 더웠습니다.

 

 저는 언성을 높였습니다. “이 더위에 그만하시고, 집에서 좀 쉬세요.” 그때 어머니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경로당이나 노인정, 마을회관에 가면 그저 누워서 며느리 이야기, 자식 이야기만 하다가 자기 건강 이야기만 하고 돌아오는 게 과연 행복이냐”고 말입니다. “운동하고, 잘 먹고, 자기 몸만 챙기며 사는 삶이 행복의 전부라면 사람이 돼지와 무엇이 다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돼지도 열심히 먹고, 자고, 또 먹고 자지 않느냐. 그렇다면 사람과 돼지의 차이는 무엇이겠느냐. 내가 못 먹어도 누군가 호박을 따먹고, 풀이 매어져 주변이 깨끗해지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로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사람답게 산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이유를 떠올렸습니다. 인간은 혼자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단지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돕고, 관계를 맺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배려하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내가 어떤 사회에 속해 있는지, 그 안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전자제품과 디지털 기술, 이제는 AI까지. 과학이 발달할수록 삶은 점점 더 개인주의화되고 있습니다. 사회성보다 개인의 삶과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입니다. 사회와 담을 쌓고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혼자 운동하고, 잘 먹고, 건강하면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가 없다면 그 삶은 과연 사람다운 삶일까싶습니다. 젊을 때는 직장인으로, 부모로, 사회 구성원으로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 살지만 정년 이후에는 쉽게 고립되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아주 작은 일이라도 사회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하루 30분 집 앞을 청소하는 일,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아이들의 횡단을 돕는 일, 외국인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찾아보면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은 의외로 가까이에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그립고, 사람을 만나야 살맛이 나고,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