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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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5일 “자연에서 배우는 이동의 태도” <임하리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부관장>

 2026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늘 앞으로 나아갈 계획을 세웁니다. 어디로 갈지, 얼마나 빨리 갈지, 무엇을 더 이루고 얻을지 말이죠. 2026년은 붉은 말의 해입니다. 말은 인류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였고, 문명의 확장에 기여해 온 존재이며, 우리에게 속도와 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의 해라는 말에는 ‘더 나아가자’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의 해에 이런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이동에 대해 아직 다 배우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다를 생각해 보면 답이 조금 보입니다. 고래는 지구에서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생명 중 하나입니다. 차가운 극지방에서 먹이를 섭취하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따뜻한 바다로 이동해 번식을 합니다. 이 긴 이동은 한 번의 모험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반복되어 온 약속에 가깝습니다. 고래는 바다를 건너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바다를 남기고 이동합니다. 그래서 그 여정의 길은 다음 해에도, 다음 세대에도 다시 열릴 수 있습니다.

 

 바다거북의 이동은 더 느리고, 더 오래 걸립니다. 태어난 직후 바다로 나간 작은 새끼 거북은 대양을 떠돌며 수십 년을 보낸 뒤, 자신이 태어난 바로 그 해변으로 돌아옵니다. 그 사이 거북은 수많은 위험을 겪지만, 길을 바꾸지 않습니다. 이동의 목적이 ‘더 좋은 곳’이 아니라 ‘되돌아가야 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연어의 이동은 가장 극적인 장면을 보여줍니다. 바다에서 성장한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기 위해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릅니다. 에너지를 아끼는 길도, 편한 선택지도 있겠지만, 연어는 그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돌아오지 못하면 다음 세대가 시작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 존재의 이동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멀리 이동하지만, 떠난 자리를 온전히 남겨 둡니다. 그래서 그 이동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반복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이동에는 항상 ‘다음에도 이 길을 쓸 수 있는가’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의 이동은 빠르지 않아도 지속되고,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갑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동은 어떤가요. 더 빨리 가기 위해 자리를 허물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돌아올 곳을 지웁니다. 길을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시 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박물관에서 일하며 이동의 끝자락을 자주 봅니다. 멸종되어가는 종, 황폐해져가는 서식지가 그 예일 것입니다. 그것들은 대부분 ‘이동 자체’가 아니라 이동의 태도가 잘못된 결과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우리에게 아주 분명한 한 가지를 가르쳐줍니다. ‘이동은 하되 가는 길을 훼손해가며 이동하지는 말아야 한다’라는 것을 요.

 

 2026년, 말의 해는 더 빨리 달리는 해가 아니라 다시 돌아올 자리를 남기며 움직이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멀리 갔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바다를 건너는 존재들은 이미 그 방식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을 다시 배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앞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