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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1일 “당연한 오늘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 <김성민 전남대학교 소아정형외과 교수>
어제, 저는 53세 여성분의 오른팔을 절단해야 했습니다. 악성 종양 때문이었습니다. 마취에 들어가기 전, 환자분은 마지막 의식이 있을 때 제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선생님, 정말 다른 방법은 없나요?” 수차례 반복된 질문이었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 분에게 오른팔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밥을 먹고, 글을 쓰고, 가족을 안아주던 삶의 도구이자 동반자였습니다. 그 팔을 잃는다는 것은, 일상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두 팔로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양치질을 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글을 씁니다. 너무 익숙해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일상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모른 채 살아갑니다. 저는 소아 정형외과와 종양 정형외과 의사로서, 뇌병변 장애 아동이나 정형외과 암 환자들을 치료해 오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연하다’ 여겼던 삶이 무너지는 순간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고등학생도 있었고, 골육종으로 팔을 절단해야 했던 대학생도 있었습니다. 척추 손상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된 직장인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걷고, 뛰고, 안는 것이 당연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조금 더 빨리 승진하려고, 조금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남보다 앞서가려고 애쓰며 살아갑니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가족과의 대화를 놓치고,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합니다. 정작 건강한 몸으로 할 수 있는 소중한 일들은 자꾸 뒤로 미루곤 합니다. 어제 수술받은 환자분은 이제 한 팔로 새로운 삶을 배워야 합니다. 단추 끼우기, 머리 묶기, 요리하기… 당연하게 하던 모든 것을 다시 익혀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살아있어서 고맙다, 가족들을 계속 볼 수 있어서 고맙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십니까? 사랑하는 이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입이 있고,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두 팔이 있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선물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오늘 집에 돌아가시면 가족들을 꼭 안아주세요.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에게도 고맙다고 말해주십시오. 내일은 오늘과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늘이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요? 하루하루가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