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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3일 "인간능력은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의 기준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허승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능력주의는 인간의 능력에 따라 재화를 분배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인간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전통적으로 인간의 능력은 ‘자기 능력’에 노력이 더해져서 나타난 결과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인간의 능력은 다양한 환경적 요인 즉,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 주변의 인적·물적 환경, 지역사회 및 국가의 능력 등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환경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실제 인간의 능력은 ‘자기 능력’과 ‘환경 능력’에 노력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첨단 공학의 시대에도 이 공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 시대에는 ‘환경 능력’보다 더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첨단 공학을 활용하는 ‘인공능력’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누가 얼마나 인공능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소유하고 전환하는지에 따라 능력의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능력은 ‘자기 능력’과 ‘환경 능력’ 그리고 ‘인공능력’이 모두 결합된 결과로 해석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능력 경쟁에서 이긴 자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의식이 지배적인 사회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식이 사회정의에 부합할까요?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아니어야 합니다. 우선 인간능력을 부와 권력의 분배 기준으로 사용하려면, 개별 인간의 능력이 온전히 자신의 능력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환경 능력’과 ‘인공능력’은 개별 인간의 고유한 능력과 관계가 없습니다. 모두 타인이나 배경 그리고 기계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능력’ 밖에 없지만, 이것조차도 고유한 자신의 능력이 아닙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기 능력’은 인간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수많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능력이기 때문에, 자신의 고유 능력이라고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즉 ‘자기 능력’은 인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래서 정의론의 대가인 롤스 역시 태어나면서 획득하는 개별 인간의 능력을 사회 전체의 공동 자산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자기 능력’은 인류의 공동 자산이고, ‘환경 능력’은 타인이나 배경 능력이며, 인공능력은 기계의 능력이기 때문에, 능력은 부와 권력의 분배 기준이 아니라, 인류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정도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즉 인류로부터 물려받은 능력만큼 인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만큼 인류 발전에 기여하되, 기여한 만큼 재화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분배하는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정도의 재화 분배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직업에 따라 존재하는 재화 분배의 격차가 크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금을 통한 재분배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고,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