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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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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9일 "소음 속의 침묵을 찾아서" <변재진 이데무용단 단장>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길을 가던 중 유리창 너머로 들리는 경쾌한 음악 소리에 엄마 손을 당겨 간 곳이 무용학원이었습니다. 무용실 한 켠에 덩그러니 앉아 음악에 맞춰 언니들의 춤추는 모습을 보며 당시 8살 인생을 살아온 저에게는 정말 처음 느껴보는 강력한 집중과 즐거움이었습니다. 8살 나이에 키보다 더 커다란 금속 파이프로 만들어진 바를 잡고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치마에 발레 슈즈를 신고 발끝을 꼼지락거리며 손짓, 발짓 이리저리 거울을 보며 움직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린 나이에 무대의 긴장감보다는 즐거움이 앞서 무대를 즐기고 느낀 그 짜릿함은 부모님의 생일선물보다도 저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무용수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며 무용 예술의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광주문화재단 예술인 육성지원사업이 주관하여 시작하게 된 다원예술 공연은 광주 지역 시민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진행하였습니다. ‘이야기’ ‘접촉’ ‘관계’ ‘감각’ 이러한 시대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을 IDEE 무용단이 ‘유리집2’ 라는 제목으로 작품 내용에 담아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현재 우리의 삶은 일상이 디지털화되고, 소통은 더욱 빠르고 편리해졌지만 그 안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전달 하고자 하였고 단순한 무용공연을 벗어나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일상의 현상들이나 그 이면에 감춰진 감정과 상실의 조각들을 몸의 움직임과 이미지, 언어, 전시가 어우러져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단면들을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디지털 문화와 정보 소비에만 빠져있는 현대인의 문제점들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환경 속에서 깊이 있는 생각이나 서정적인 사유는 사라져 가는 상태의 심각성을 자연스럽게 공연으로 관객들에게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정보만 요구하는 사회에서 읽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능력이 점점 상실해져 가고,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기록하고 감시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지금!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스스로를 통제하고 착취하며 SNS, 유튜브, 플랫폼 등에 끊임없이 자신을 갈아넣음으로서 클릭 한 번이면 세상의 소식이 밀려오고, 손가락 몇 번이면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세상.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홍수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되고 피로해지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인간적 위기를 깨닫고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공연 안내자의 역할 담당하였습니다. 이 공연은 단지 현대 기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인간성, 사유, 침묵 관계의 회복을 이야기 함으로써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보보다는 잠시 멈추어 스스로와 마주할 시간이 라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정보는 넘치지만 진실은 희미한 시대, 끊임없이 반응하며 소모될 것인지, 아니면 잠시 멈추고 진짜 나와 타인에게 귀 기울일 것인지. 지금 이 순간, 서로의 경계가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진짜 ‘나’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디지털의 물결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