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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9일 "사법의 정치화" <임지석 변호사>
최근 우리 정치의 중심에는 ‘법정’이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 후보 자격 논란, 탄핵안 남발. 이 모든 문제가 법원의 판결에 따라 결정되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최고법인 헌법이 추구하는 “삼권분립의 본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늘은 법률전문가의 관점에서, 정치 문제가 사법화될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적 갈등을 법원, 즉 사법부에 의존해 해결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정당의 후보 단일화 문제를 법원의 가처분으로 결정하거나, 최종 결정을 법원이 해야만 하는 국회의 탄핵권을 남용하는 것들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는 직접적으로 다음의 수순을 밟게 됩니다.
첫째,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됩니다. 대통령 중심국가인 한국의 경우, 결국 대법원 수장의 임명이나 예산안 편성 등 사법부를 존치시키는 주요 결정은 정치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과 국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법원이 정치적 압력에 노출되면 사법부는 생존을 위해 정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이는 판결의 일관성을 무너트립니다.
둘째, 판결의 일관성이 무너지면 국민의 신뢰가 추락합니다.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대전제로 현재의 체제를 신뢰하는 국민들에게 “권력이 생기면 같은 일에도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의심은 국민 신뢰의 추락과 함께 현 정부체제에 크나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이 50%에 육박한다는 조사결과 들은 이미 체제붕괴의 경고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분립의 본질이 훼손되고,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면 현 국가 시스템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체제가 유지된다면 필연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까요?
“삼권분립”은 입법·행정·사법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독주를 막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법원에 떠넘기면, 모든 권력 결정이 법원에서 이루어져 사법부가 사실상 ‘초권력’기관이 됩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외형만 민주주의인 법원 독재 국가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대통령을 법원이 결정하고, 국민의 선택으로 결정된 대통령도 법원이 바꿀 수 있으며, 법원에 맞서는 모든 행위 주체들을 법원이 탄핵할 수 있다면, “법원 독재 국가”라는 실질을 의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에 정치는 대의제의 명분만을 제공하고, 사법부의 판단만을 기다리는 하위주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 문제는 정치로 풀어야 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정치에 대한 존중을 넘어, 권력분립을 위한 당위적인 의무입니다. 정치인들이 스스로의 역할을 되찾고, 민주주의의 주인인 국민이 올바른 판단으로 선거권을 행사할 때 비로소 삼권분립의 건강한 균형이 회복될 것입니다.
법원은 정치의 주무대가 아닙니다. 사법부가 정치적 화약고가 되기 전에, 우리 모두가 권력의 책임을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정치의 사법화가 아니라 정치의 성숙화를 위한 첫걸음을 시작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