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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1일 “지역이 부담한 책임, 세금으로 되돌려야” <박기영 순천대 명예교수>

 한국의 조세 구조는 국세 중심 체계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전체 세수에서 국세가 약 75%, 지방세가 25%인 75:25 비율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주요 세목은 모두 국세이며, 징수된 세수는 중앙정부에 귀속됩니다. 특히 이들 세목은 생산지보다는 본사 소재지 기준을 따르기에, 지방에 공장이 있어도 세금은 수도권으로 향하는 수도권 집중형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컨대 전남 동부권, 즉 여수와 광양은 전국 최고 수준의 제조업 집적지입니다. 철강, 석유화학, 정유 시설이 밀집해 있어 전남 제조업 부가가치의 78%, 전국 기준으로도 제조업 총부가가치의 약 3.9%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순천세무서와 여수세무서를 통해 2023년 한 해 동안 4조 3천억 원의 국세가 걷혔습니다. 이는 국세청 연간 징수 기준으로 약 1.6% 수준입니다. 이 국세의 약 70%는 유류 생산량을 기반으로 부과되는 목적세인 교통에너지환경세로, 주로 도로 및 교통 인프라 확충에 사용되며 일부는 환경 관련 재정에도 활용됩니다.

 

 법인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윤이 발생한 곳은 생산현장이지만, 본사 소재지 기준 과세 원칙에 따라 징수되므로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인프라 손상, 사회적 비용 등을 해당 지역이 감당하고 있지만, 이에 상응하는 조세 수입은 거의 귀속되지 않습니다.

 

 현재 광주·전남 대부분 지역은 탄소중립 전환 필요, 산업 고도화 정체, 청년 이탈, 지역대학 위기 등 복합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특히 여수·광양의 석유화학 및 철강 산업은 글로벌 수요 감소와 환경규제, 특히 미국의 관세압박으로 지역산업 기반 자체가 위협받고 있으며, 산업 전환을 위한 대규모 재정투자 없이는 회복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제는 중앙 중심의 국세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생산과 책임을 지는 지역에 세금이 되돌아오는 조세 분권 구조 개편이 시급합니다. 지방소득세와 지방소비세의 징수가 늘어나더라도, 이에 따라 지방교부세가 감액되면서 실제로 지방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총 재원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진적 구조가 나타납니다. 지방이 실제 사용하는 예산은 전체 정부지출의 71%에 달하지만, 재정 결정권은 중앙에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지역의 조세 자립을 위해서는 법인세 공유제도가 핵심입니다.

 

 국세인 법인세의 일부를 지방과 공유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독일은 법인세 세율을 연방과 주가 공동으로 설계하고, 징수된 세금의 절반을 주정부에 귀속시킵니다. 캐나다는 연방정부 외에 주정부가 자체적으로 법인세를 추가로 과세하며 세입은 전액 지역 재원입니다. 미국은 연방·주·지방정부가 각각 법인세를 부과하여, 기업의 활동 지역에서 세입 기반을 구축합니다. 

 

 한국은 연방제 국가는 아니지만,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이제 법인세 공유제도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지역에서 징수한 국세의 20%만이라도 생산지 기준으로 지방에 자동 귀속되도록 제도화하면, 여수·광양은 연간 약 8천억 원의 세입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재원은 환경 개선, 산업 구조 전환, 청년 일자리, 지역대학 연계 R&D 투자 등 지역 재투자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지역균형발전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입니다. 수도권 중심 조세 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지방은 쇠퇴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지역이 자립하고 지속가능하려면, 조세 구조에서부터 재정 분권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방시대, 그리고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