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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일 “칭찬의 함정, 우리 아이들은 고래가 아니다” <허승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아이들 교육에서 칭찬의 힘과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이 말에는, “잘했어!”, “정말 똑똑하네”, “우리 딸, 우리 아들 최고야”와 같은 칭찬이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줘서 앞으로 더 잘하게 될 것이라는 어른들의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런 믿음이 사실일까요? 고래가 재밌어서 춤을 출까요? 아닙니다. 고래는 먹이를 먹기 위해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도 칭찬이라는 먹이 때문에 춤을 추게 만들어야 할까요? 조금만 생각하면, 칭찬에는 심각한 함정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교육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알피 콘(Alfie Kohn, 1957~)은 칭찬이 ‘외부의 인정과 권위’에 길들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보상과 처벌 모두 학생의 내적 동기를 해친다고 경고합니다. 즉, 보상과 처벌은 아이들을 외적 보상을 얻기 위해 또는 벌 받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보상과 처벌을 통해 아이들로부터 스스로 하는 기쁨을 빼앗아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칭찬은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줍니다. ‘잘한다’는 칭찬의 말 뒤에는 ‘못한다’는 질책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지금은 칭찬을 받더라도 추후에 칭찬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봐 불안하게 됩니다. 이 불안감으로 인해 잘하지 못하는 상황은 회피하고, 잘하지 못 하는 결과가 나오면 이를 은폐합니다.
더 큰 문제는 칭찬이 관심과 사랑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칭찬을 하는 어른들은 본인이 아이를 사랑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칭찬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불신과 평가의 표현입니다. 칭찬에는 칭찬하지 않으면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 그래서 잘하고 못함을 평가해서 아이를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학교 교육에서 칭찬의 결정판은 ‘상’입니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학교는 잘하는 아이들에게 각종 ‘상’을 수여합니다. 여기에도 역시 상이 아이들을 잘하게 만드는 자극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상은 ‘받는 자와 못 받는 자’를 양분합니다. 그래서 받는 자에게는 우월감을, 못 받는 자에게는 열등감을 심어줍니다. 심지어는 2등도 패배자로 만듭니다. 매우 반교육적인 처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아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물론 지켜본다는 것은 감시가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믿고 관심을 보여주면, 칭찬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더 뭔가 해주고 싶다면, 아이가 하는 일을 보이는 대로 읽어 줍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 “그림 잘 그리네”와 같이 평가하지 않고, “그림 그리고 있구나”, “파란색을 많이 사용했네”와 같은 표현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아이의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면, 아이가 하는 일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눕니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니?”, “파란색을 많이 사용한 이유가 있을까?”와 같은 표현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관심과 사랑과 대화가 아이들을 자신을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만듭니다. 먹이를 먹기 위해서 춤추는 고래처럼, 칭찬을 받기 위해서 춤추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칭찬을 많이 하십시오.
우리 아이들은 고래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칭찬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춤추는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