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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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7일 “가을 산행기” <김갑주 두메푸드시스템 대표>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뜨거운 여름도 지나가고 가을이 옵니다. 가을 하면 결실과 함께 계절의 변화를 만나게 됩니다. “푸른 잎은 붉은치마로, 남쪽나라 찾아가는 제비를 다시 오라” 노래하는 동요처럼 가을은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으로 바뀌어 갑니다. 저는 중증 시각장애가 있지만 산행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낍니다.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활동으로 독서나 명상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등산을 통해 건강과 친교와 내일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산행과 함께 느낀 감동을 글로 쓰곤하는데 오늘 소개하는 산행기로 가을을 준비하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목 길을 시작하다.

 3,776m 후지산을 간다. 현재 나의 상황이 여유롭지 못하여 일상의 시간이 바쁘게 있지만, 일탈의 시간과 새로운 도전은 또 다른 나의 준비라 생각하기에 후지산 정상을 향하여 몸과 마음을 옮긴다. 7월 17일 새벽 2시에 광주시청에서 김포공항으로 출발하여, 오전 8시 하네다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그리고 이내 버스를 타고 후지산 2400m 고지 오합목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었다. 후지산 중턱은 길도 가지런히 이어졌고 햇빛은 깨끗하게 내리는데 수많은 나라의 여행객들의 도란거리는 소리와 여행객을 싣고 다니는 말굽 소리가 여유롭다. 후지산을 기념할 지팡이를 구매하여 지팡이에 “길을 시작하다”를 새겨 들고 후지산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산허리를 휘감아 가는 등산로는 완만한 경사로 이어간다. 발끝에는 화산재가 자갈만한 크기로 발길에 걸리고, 산 아래로는 가지런한 푸른 나무들이 울창하게 바다처럼 펼쳐지고, 어쩌다 작게 작게 풀 몇 포기 화산 바위 틈에 박혀 있고 온통 화산 돌모듬 위로 구름과 하늘이 덮고 있다. 

 

 육합목, 칠합목을 오르는데 점점 등산로가 거칠어진다. 고산증이 있어서인지 큰 돌덩이를 넘을 때는 머리속이 움찔움찔 한다. 경사도 심해지고 온도도 서서히 차가워진다. 출발한 지 3시간... 3400m 고지.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오르니 목적지보다 먼저 밤이 우리를 맞이한다. 후지산 정상에는 무엇이 있길래 신비의 후지산, 행운의 후지산이라며 오르는 것인가 하는 선문답을 해본다. 

 

 후지산 새벽은 추웠다. 거친 화산 돌덩이를 넘을 때마다 얼마나 많은 세월과 용광로 보다 더한 지옥같은 불구덩이를 이기고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춥고 어두운 길을 가르며 정상에 오르니 새벽 4시가 넘어있다. 정상에서는 환희의 눈물이 비바람으로 바뀌어 나를 맞이한다. 화산 분화구에 서니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모았는지 불어오는 바람에 내 몸이 한걸음씩 떠밀린다. 내 몸에 거칠게 부서지는 빗방울과 차가운 돌풍은 후지산 질투로 충분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1977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느 잡지 광고에서 후지산 정상에 눈덮힌 사진을 보며 가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되뇌였었다. 그리고 약 40여년이 지난 지금, 실명 전에 보았던 꿈이 시각장애인이 되어 그 현장에 서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진리가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3,776m의 정상 표지석 앞에 내 몸을 세웠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내 마음에 새겨도 충분하지만, 40여년 전 누군가 찍어 보여주었던 후지산처럼 내 사진이 어느 동기를 만들어 내리라는 소박한 기대감으로 새기고 새긴다. 또 누군가 내가 걸었던 길을 따라 올테니.  

 

 누구도 후회없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채워야하는 꿈을 꾸어 본다. 오늘도 산은 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