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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일 “세계의 건축가 – 고둥” <임하리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부관장>
바닷가를 걷다 보면, 파도에 밀려온 조그만 고둥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은 고둥을 손바닥 위에 올려 살펴보니, 안쪽으로 빙글빙글 이어지는 나선의 길이 펼쳐졌지요. 그저 버려진 껍질이라 생각하기엔, 너무 아름다운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고둥의 모양을 자세히 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둥은 바다의 건축가입니다. 그 어려운 모양을 설계도와 도면 한 장 없이, 자신의 몸을 감싸는 완벽한 집을 짓기 때문입니다. 그 집은 자신을 보호하며, 물에 젖지도, 불에 잘 타지도, 또 가벼워 이동도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는지 가끔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패류의 곡선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의 성장과 수학적인 질서가 만들어낸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고둥의 나선은 ‘황금비율’을 따라 자라며, 그 안쪽으로 돌수록 좁아지는 공간 속에는 시간의 흔적이 한 겹씩 쌓여 있습니다. 이 작은 생물은 매일, 자신의 속도로, 필요한 만큼만 집을 확장하며, 욕심도, 낭비도 없이, 살아갈 만큼만의 공간을 만드는 겸손한 건축가입니다.
저는 몇 해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출장을 갔습니다. 그 곳에서 가우디의 많은 건축물들을 접했을 때, 그 부드러운 곡선들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가우디의 건축물의 특징은 직선을 최대한 배제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활용하여, 건축물이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냈습니다. 가우디의 건축물 중에 그 어디에서도 직선은 없었습니다. 구엘 공원, 까사 바트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그의 여러 건축물에는 나뭇잎이나 조개의 나선, 벌집의 육각 구조, 파도의 물결 같은 자연의 형상이 녹아 있습니다. 이런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들 덕분에 가우디는 세계 건축사에서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독창적인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가우디는 곡선을 활용하여 모든 형태를 만드는 이유를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흐르고, 빛은 그 곡선을 따라 살아 움직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합니다. 저는 이러한 인간의 건축물과 자연의 건축물 속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가우디의 건축이 결국 바다의 곡선, 고둥의 나선형을 닮아 있다는 것을요. 고둥은 바다에서, 가우디는 인간의 도시 속에서 자연의 원리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모두 ‘조화’를 배운 건축가였습니다.
가우디는 “자연에는 낭비가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자연물인 고둥 역시 불필요한 부분 없이, 자신이 살아갈 만큼만의 공간을 지어냅니다. 저는 이러한 고둥의 집을 짓는 건축 기술을 보면서, 그들의 질서와 절제, 그리고 낭비와 사치가 없는 그것이 진짜 우리가 또 느끼는 아름다움의 원리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제 일터의 많은 고둥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진정한 건축이란, 크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와 질서로 쌓아가는 삶’이라는 것을요. 가우디가 도시 위에 자연의 곡선을 세웠듯,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맞는 공간과 시간을 지어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삶을 설계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자 지금 이 바다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세계의 건축’이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