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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6일 “정답은 없다” <정희남 대담미술관장>
몇 년 전 가깝게 지내는 제자에게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들이 과학고에 합격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미술관에 자주 왔었고, 어린 시절 미술관에서 거의, 많은 시간을 보냈었기에 더더욱 반가웠습니다.
저는 항상 초등학생 시절에는 창의력과 인성교육의 기틀을 쌓아야 한다고 역설해 왔습니다. 초등 시절부터 너무 이성적 학문에만 치중하면 상상력·창의력이 고갈되어 더이상 발전할 수 없고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고 교육하였습니다. 그것을 증명해 준 것 같아 더더욱 보람을 느끼기까지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집을 그리라’는 것을 이성적인 학문으로 접근하면, 가로, 세로, 높이, 형태의 자재 등을 분석적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성적 예술로 접근하면 네모집, 세모집, 기찻집, 별모양, 동그라미 등 이 세상에 없는 또 다른 집의 형태를 상상하고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의 집들이 탄생합니다. 상상하고, 추리하고, 공상하고 하면서 뇌는 활발히 활동하고 자기 생각을 하다보니 즐겁고 만족스럽고 이 세상 자기 생각이 독특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주체성과 남과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감, 자부심까지 갖게 될 것입니다.
너무 한시적으로 보면 차이가 나겠지만, 멀리 인생 전체를 생각하면 아마도 더 큰 차이가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많이 경험하고, 많이 느끼고, 많이 생각하게 하여 사고의 폭을 확장시는 것, 즉 인생의 튼튼한 기초를 쌓아 주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오랜 직장생활로 늘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제 딸의 일화도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퇴근길에 소꿉장난하던 딸아이는 자기보다 훨씬 작은 아이의 하인이 되어 열심히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다음날도 궁금하여 그 장소에 갔더니 여전히 하인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 여자아이는 제 딸에게 꾸지람하여 큰소리를 치며 상을 다시 차려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전 살며시 다가가서 “하루씩 교대해서 공주 하인을 해야지”했더니 딸이 얼른 내 손을 이끌고 멀리 떨어져서 “쟤로 하인시키면 집에 가버려,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가, 난 집에 엄마가 없잖아. 그러니 내가 맨날 하인해도 괜찮아, 그런 말 하지마”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제 딸아이는 혼자 있으면서 독립이라는 것을 배웠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뒤로도 저는 가능한 한 간섭없이 모든 것을 본인이 결정하도록 하였고, 지금도 그 원칙을 지키려 무지 애를 쓰고 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적당히 자유를 줄 것인지, 적절한 간섭과 교육으로 어떠한 틀을 지키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에 주인공은 부모와 교사가 아닙니다.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내는 인내심과 관찰력이 더욱 필요한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