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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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9일 “지역 문화예술시설, 문화예술 창작의 산실로 변해야한다” <장용석 전남문화재단 이사>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국내 문화예술 환경 가운데 눈에 띄는 부분은 각 지역의 문화예술 시설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흔히 불리우는 복합문화센터뿐만 아니라 중소공연장, 각 지역의 문화재단의 공연장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공간들이 전국의 각 지자체에 건립돼 있습니다. 인구 대비 공연장이나 문화예술 시설이 과밀집된 도시도 많은 상황입니다. 이제는 문화예술 시설이 없어서 공연을 못한다는 말은 과거의 얘기가 된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도 다양해지고 행사와 공연도 많아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문화도시가 된 것 같고,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도 훨씬 많아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우리의 지역 공연문화는 천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의 문화예술 시설, 특히 공공 공연장은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의 산실이 아니라 소비형 이벤트 공간으로 변한지 오래됐습니다. 지역 예술가들에게는 문화재단이나 공연시설의 극히 일부 지원금의 혜택이 갈 뿐입니다. 지역의 공공 공연장이나 문화예술 시설의 예산은 공공재원으로 운영되는데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유명한 예술가들의 공연을 유치하거나 운영비와 인건비로 소모됩니다. 

 

 물론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저렴하게 유명 공연을 볼 수 있어 좋은 일이지만, 지역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역의 공공 공연장의 예산이 특정 공연이나 유명 예술가들에게 몰려 있고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지역 예술가들의 몫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엄밀히 말해 지역민의 세금이 특정 공연의 관람 혜택으로 이어지는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지역 예술가들에게는 지역의 공공 공연장은 그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의 공연장이 늘어나도 정작 지역 예술가들이 설 무대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지역의 공연장은 본디 창작의 산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 예술가들에게 우선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지역 공공 공연장은 창작의 공간이 아닌 행사 중심의 소비형 이벤트 공간이나 대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현재 국내 지역의 공공형 공연장은 약 70% 이상이 행정공무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80% 이상이 대관 중심의 관리운영 체계이며, 독자적인 기획공연은 20%에도 미치지 않는 현실입니다. 그 20%에도 미치지 않는 기획공연 가운데 지역 예술가가 참여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프로그램은 양적으로 늘어났지만 지역 창작자, 지역 예술가 중심의 프로그램들은 오히려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시설은 늘어났지만 정작 그 안을 채우는 콘텐츠와 철학은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립극장,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도 자율경영 비율을 늘려가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의 소극장이나 문화예술 자원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자립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적극 지원을 하는 것이 새로운 시설을 짓는 것보다 오히려 예산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역문화예술 정책은 지자체나 공공의 영역만이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과 민간이 함께 해야 상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자체가 새로운 공연장을 만들순 있지만, 그러나 그 운영은 전문 예술단체나 문화예술협회, 문화기획단체 등 민간 주체에게 위탁해 자율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됐을 때 공연장은 공공의 건물이 아니라 예술과 창의성이 살아 있는 창작의 산실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공공은 기반과 환경을 마련하고, 문화예술가들은 자율성과 창조적인 경영으로 운영하며, 시민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환경,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속 가능한 지역 문화예술, 공연문화의 모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