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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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6일 “자존감과 자만심: 나를 어떻게 존재하게 하는가” <허승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우리는 흔히 자존감과 자만심을 비슷한 마음으로 착각합니다. 둘 다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존감과 자만심의 차이는 이렇습니다. 자존감은 조용한 확신이고 자만심은 시끄러운 증명입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굳이 자신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기 안에 “나는 이 정도의 사람이다”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만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를 늘 증명해야 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뛰어난지, 자기가 남보다 얼마나 더 나은지 끊임없이 보여주려 합니다.

 

 먼저, 직장에서 한 장면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한 직원이 상사에게서 이런 피드백을 받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방향은 좋았지만 자료 정리가 조금 아쉽습니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아, 그 부분은 제가 더 보완하겠습니다.” 비판을 자기 부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장에 필요한 정보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자만심이 강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저도 잘 알고 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생긴 일입니다.” 상사의 피드백을 곧 자기 존재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방어부터 합니다.

 

 이번에는 경쟁 상황을 보겠습니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경쟁자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에게 배울 점이 많다.” 패배했을 때도 “이번엔 졌지만 다음엔 더 잘 준비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비교는 참고 자료일 뿐, 자기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반면 자만심이 강한 사람은 경쟁자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저 사람이 운이 좋았을 뿐이야.” “심사 기준이 이상했어.” 경쟁을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자신을 위협하는 전쟁으로 받아들입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차이가 더 분명해집니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의견이 달라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 생각은 그렇군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자기 생각을 말해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과도 할 수 있습니다. 사과가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관계를 지키는 선택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만심이 강한 사람은 사과를 약점으로 여깁니다. 늘 우위에 서야 안심합니다.

 

 성공과 실패 앞에서도 두 마음은 다르게 반응합니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성공해도 이렇게 말합니다. “노력은 했지만 주위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이야.” 실패했을 때는 “이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성과와 자신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만심은 성과와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성공하면 “역시 나는 특별해”라고 말하고, 실패하면 자기 세계 전체가 흔들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나를 타인과 비교함으로써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가? 아니면 자기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고 있는가?” 자존감은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는 조용한 신뢰입니다. 자만심은 “타인이 내가 남보다 낫다는 걸 알아줘야 한다”는 불안한 외침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존감을 키운다며 자기를 더 높이려 합니다. 하지만 진짜 자존감은 자기를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정확히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부족한 것은 부족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힘. 그 균형이 바로 자존감입니다.

 

 오늘 하루,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야 내가 괜찮아지는 순간이 있었다면 그건 자존감이 아니라 자만심의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비판을 들어도 내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건 이미 건강한 자존감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오늘 마음은 어디에 가까운지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