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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7일 “새해, 당신의 마음에는 ‘케렌시아’가 있습니까?” <변길현 광주시립 하정웅미술관장 >
안녕하십니까? 큐레이터 변길현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 인사드립니다. 이제 진정한 병오년(丙午年)의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떡국 한 그릇에 담긴 덕담처럼,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낯선 외국어인 “케렌시아”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안식처를 뜻합니다.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며 쉬는 곳.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 혼자만 쉴 수 있는 곳. 어린 시절 다락방 같은 곳 말입니다. 누구에게는 서재가, 누구에게는 베란다의 작은 탁자가, 누구에게는 농막이 케렌시아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건축계에서는 이런 케렌시아 공간이 거주자에게 큰 만족감을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대인 대다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 구조에서는 이런 케렌시아 같은 공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휴일에 아파트 거실 소파에 누워있는 아빠의 모습. 쉽게 상상이 가시죠?
그런데 만약, 당장 나만의 물리적인 케렌시아 공간을 갖기 어려운 형편이라면 어떡해야 할까요? 저는 그 해답을 “취미”에서 찾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케렌시아가 물리적인 공간이라면 취미는 자기만의 몰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취미는 단순한 여가 활용을 넘어 현대인의 건강을 지키는 정신적 카렌시아입니다. 취미 활동에 몰입하는 순간, 우리는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 이유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우리 뇌에서 행복 호르몬이 분비가 되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저는 제 직업 때문에 국내외 여러 뮤지엄을 다니면서 작품 앞에서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관람객들을 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 분들은 뮤지엄 방문이라는 취미를 통해 감동을 받고 자신의 삶에 새로운 용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현재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유의 방” 전시를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전시를 보면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반가사유상의 의미. 그리고 더 나아가 나의 존재에 대한 성찰이 따라오게 됩니다.
청취자 여러분, 꼭 미술관 방문만이 취미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계절을 느끼면서 산책하는 시간,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읽는 시간,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과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혹은 베란다의 작은 화초에 물을 주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세상의 소음이 차단됩니다. 물리적인 케렌시아는 없어도, 무언가에 몰입하는 그 뜨거운 ‘열정’이 우리 마음속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단단한 안식처를 만들어주는 것이죠.
청취자 여러분, 올 한 해는 여러분의 일상에 물리적 안식처이든 정신적 취미활동이든 무언가를 작게 만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작은 의자 하나, 애착 인형 하나만으로도 나의 물리적 케렌시아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취미에 대한 소소한 열정들이 여러분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케렌시아가 되어줄 것입니다.
음력 설날인 오늘부터, 여러분의 마음 한구석에 작지만 아늑한 ‘자기만의 방’ 하나가 지어지길 소망합니다. 그곳에서 마음껏 꿈꾸고, 마음껏 쉬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고맙습니다.
